풍윤(豊潤)은 우북평의 인근이였다. 낙양에서 2300리 우북평은 후한서에서 당시 토은현(土垠縣)에 있었는데, 그 위치는 현재 당산시(唐山市) 북쪽 풍윤(豊潤) 위치다. 산융족의 무종국은 남수(藍水)변인데 이는 옥전(玉田) 위치다. 후단군시대 남국의 위치다. 우문씨는 원래 흉노 일파였다가 선비족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하북성 풍윤 동남쪽의 우북평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으며 훗날 북주(557~581년)를 건립한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는 나무에 목을 매서 자결했다. 대명 왕조는 이렇게 종언을 고했다. 3월 20일, 오삼계는 풍윤(豊潤)에 이르렀으나 도성이 이미 이자성에게 함락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분류:북경
풍윤(豊潤)은 우북평의 인근이였다. 낙양에서 2300리 우북평은 후한서에서 당시 토은현(土垠縣)에 있었는데, 그 위치는 현재 당산시(唐山市) 북쪽 풍윤(豊潤) 위치다. 산융족의 무종국은 남수(藍水)변인데 이는 옥전(玉田) 위치다. 후단군시대 남국의 위치다. 우문씨는 원래 흉노 일파였다가 선비족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하북성 풍윤 동남쪽의 우북평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으며 훗날 북주(557~581년)를 건립한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는 나무에 목을 매서 자결했다. 대명 왕조는 이렇게 종언을 고했다. 3월 20일, 오삼계는 풍윤(豊潤)에 이르렀으나 도성이 이미 이자성에게 함락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분류:북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