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첨 [姜民瞻,?∼ 1021(현종 12)]은 고려 현종 때의 장군이다. 강민첨은 진주 진강사람이니 목종조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고려(高麗)시대의 명장(名將)으로 강감찬과 함께 거란군을 물리쳤다. 본관은 진주. 목종 때 문과에 급제했다. 1012년(현종 3) 5월 안찰사(按察使)로서 문연(文演)·이인택(李仁澤)·조자기(曺子奇) 등과 함께 영일(迎日)·청하(淸河)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東女眞)을 격퇴했다. 1018년에는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고려는 강감찬을 상원수,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20만 8천의 대군으로 맞서 싸우게 하였다. 그는 평장사(平章事) 강감찬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격파했다. 패배한 거란군이 바로 개경(開京)으로 쳐들어가자, 이를 추격하여 자주(慈州:지금의 평남 자산)에서 크게 이겼다. 그 공으로 응양상장군 주국(鷹揚上將軍柱國)이 되고, 이어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되어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에 녹훈되었다. 1020년 지중추사 병부상서(知中樞事兵部尙書)가 되었다.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추증되었으며, 문종 때 공신각(功臣閣)에 올랐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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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첨 [姜民瞻,?∼ 1021(현종 12)]은 고려 현종 때의 장군이다. 강민첨은 진주 진강사람이니 목종조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고려(高麗)시대의 명장(名將)으로 강감찬과 함께 거란군을 물리쳤다. 본관은 진주. 목종 때 문과에 급제했다. 1012년(현종 3) 5월 안찰사(按察使)로서 문연(文演)·이인택(李仁澤)·조자기(曺子奇) 등과 함께 영일(迎日)·청하(淸河)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東女眞)을 격퇴했다. 1018년에는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고려는 강감찬을 상원수,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20만 8천의 대군으로 맞서 싸우게 하였다. 그는 평장사(平章事) 강감찬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격파했다. 패배한 거란군이 바로 개경(開京)으로 쳐들어가자, 이를 추격하여 자주(慈州:지금의 평남 자산)에서 크게 이겼다. 그 공으로 응양상장군 주국(鷹揚上將軍柱國)이 되고, 이어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되어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에 녹훈되었다. 1020년 지중추사 병부상서(知中樞事兵部尙書)가 되었다.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추증되었으며, 문종 때 공신각(功臣閣)에 올랐다. <고려병부상서은열강공유허비>는 진주 시내 옥봉동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강민첨 장군 사당으로 이곳은 장군의 탄지이기도 하다. 말년에 성남에 살았다는 그 때 부원수였던 강민첨 장군도 충청도 예산군에 묘가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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