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문은 갈포려의 동생이였다. 갈포려(葛浦廬)는 서한(西漢) 말년에 군대를 일으켜 남양(南陽)의 지주(地主) 유수(劉秀)를 도왔다. 유수는 동한(東漢)을 건립한 초대왕 광무제(光武帝 : 서기 25 년 - 서기 57 년)이다. 광무제는 갈포려에게 전공(戰功)을 치하하며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에 봉하였다. 갈포려의 동생 갈문(葛文) 역시 종군 작전에 공로가 컸으며 전쟁으로 인하여 몸에 많은 부상을 입고 오른쪽 눈은 적군의 화살에 맞아 실명까지 하였다. 갈포려는 자기의 친동생 갈문에게도 작위를 내려 달라고 광무제에게 상서하였다. 그러나 갈문은 민간인 자격으로 종군하였기 때문에 아무런 훈장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갈포려는 작위만 자기가 가지고 봉록(俸祿)은 모두 갈문에게 주었다. 갈포려는 가족을 데리고 남쪽으로 이사하여 구용현에 정착하여 은퇴 후 전원생활을 시작하였다.
갈문은 갈포려의 동생이였다. 갈포려(葛浦廬)는 서한(西漢) 말년에 군대를 일으켜 남양(南陽)의 지주(地主) 유수(劉秀)를 도왔다. 유수는 동한(東漢)을 건립한 초대왕 광무제(光武帝 : 서기 25 년 - 서기 57 년)이다. 광무제는 갈포려에게 전공(戰功)을 치하하며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에 봉하였다. 갈포려의 동생 갈문(葛文) 역시 종군 작전에 공로가 컸으며 전쟁으로 인하여 몸에 많은 부상을 입고 오른쪽 눈은 적군의 화살에 맞아 실명까지 하였다. 갈포려는 자기의 친동생 갈문에게도 작위를 내려 달라고 광무제에게 상서하였다. 그러나 갈문은 민간인 자격으로 종군하였기 때문에 아무런 훈장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갈포려는 작위만 자기가 가지고 봉록(俸祿)은 모두 갈문에게 주었다. 갈포려는 가족을 데리고 남쪽으로 이사하여 구용현에 정착하여 은퇴 후 전원생활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