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메드 2세 (오스만 터키어: محمد ثانى, 터키어: II. Mehmet, 1432년 3월 30일 - 1481년 5월 3일)는 오스만 제국의 제7대 술탄이다. 바르나에서 무라드 2세가 거둔 승리(1444. 11. 10)로 위기는 가라앉았다. 메메드는 부친의 단골 은거지인 마니사로 보내졌다. 무라드 2세는 어쩌면 메메드 2세의 계승권 박탈까지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메메드 2세는 에디르네에서 계속 제위를 유지했고 부친은 전쟁이 끝나자 마니사로 다시 은퇴했다. 비잔틴 제국이 존속하는 동안 콘스탄티노플은 단 한번도 침략을 받지 않앗다.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메드 2세가 그의 재상으로부터 생일 선물을 어떠한 것으로 받고 싶냐는 물음에 그는 콘스탄티노플을 갖기 원한다고 하였다. 1451년 아버지인 무라드 2세의 뒤를 이어 술탄의 자리에 오른 메메드 2세는 천년 고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발칸과 아시아를 잇는 대제국 건설의 기틀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그는 강력한 지도자로 떠올랐고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유럽 최강의 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메메드 2세와 같은 정복자보다 터키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그 땅이 꽃피운 문화일 것이다.
메메드 2세 (오스만 터키어: محمد ثانى, 터키어: II. Mehmet, 1432년 3월 30일 - 1481년 5월 3일)는 오스만 제국의 제7대 술탄이다. 바르나에서 무라드 2세가 거둔 승리(1444. 11. 10)로 위기는 가라앉았다. 메메드는 부친의 단골 은거지인 마니사로 보내졌다. 무라드 2세는 어쩌면 메메드 2세의 계승권 박탈까지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메메드 2세는 에디르네에서 계속 제위를 유지했고 부친은 전쟁이 끝나자 마니사로 다시 은퇴했다. 비잔틴 제국이 존속하는 동안 콘스탄티노플은 단 한번도 침략을 받지 않앗다.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메드 2세가 그의 재상으로부터 생일 선물을 어떠한 것으로 받고 싶냐는 물음에 그는 콘스탄티노플을 갖기 원한다고 하였다. 1451년 아버지인 무라드 2세의 뒤를 이어 술탄의 자리에 오른 메메드 2세는 천년 고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발칸과 아시아를 잇는 대제국 건설의 기틀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1453년 4월 6일 새벽.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향해 대포가 발사됐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7대 술탄 메메드 2세가 이끄는 군대는 이날 격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터키 하면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떠오르게 만든 장본인은,1453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한 메메드 2세다.하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 입성은 메메드 2세 한 사람만의 공은 아니다. 이를 통해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오랜 숙적을 제거하고 내부적으로도 술탄의 권력을 강화시켜 전성기를 맞는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바예지드 1세는 보스포루스 해협 의 아시아쪽에 거대한 요새, 아나돌루 히사르를 세웠는데, 그의 증손자인 술탄 메메드 2세 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벽 바깥, 즉 유럽 쪽 해협에 두 번째 요새를 세운다. 그는 강력한 지도자로 떠올랐고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유럽 최강의 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메메드 2세와 같은 정복자보다 터키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그 땅이 꽃피운 문화일 것이다. 1462년 드라큘라, 메메드 2세 군사를 습격해 수천 명을 살해한 뒤 말뚝형에 처하고 메메드 2세는 겨우 목숨을 건진다. 분류:오스만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