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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막은 거란이였다. 거란은 본래 동호(東胡)족으로서 그 선조가 흉노(匈奴)에게 패해서 선비산(鮮卑山)을 차지하고 살았다. 고막해(庫莫奚)와는 다른 종족이지만 한패가 되더니 모두 모용씨(慕容氏)에게 패한 바 되어서, 거란은 송막(松漠)에 머무르는데, 지금의 난하와 시라무렌강이 만나는 유역이다. 『북사』는 “해는 거란과 이종 동류로 본래 고막해(庫莫奚)라 하였는데 그 선조가 동호의 우문(宇文)의 별종(『北史』卷94「奚」)”이라고 한다. 한대에는 해인(奚人)이 점거했다. 한말 조조에게 패하여 달아나 송막(松漠) 사이에 숨어버렸다. 후위대에 재차 이곳에 거주했는데, 고막해(庫莫奚)라고 불렀다. 송막 지방에 숨어살던 선비족 우문부의 잔당이 전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니, 이들이 "고막해(庫莫奚)"족이다. 혹은 "해"족이라 한다. '거란'이라는 용어는 모용연(慕容燕)에 의해 격파된 선비족(鮮卑族)이 우문(宇文)·해(奚)·거란으로 나뉘어 송막(松漠) 지방으로 피신한 4세기 전반부터 비로소 사서(史書)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중국의 일부가 된 것은 당나라 때에 그 지역에 현주(玄州), 송막(松漠) 도독부를 설치한 것이 징표가 될 것이다. 이굴가는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려 할 때 당나라에 투항하여 신속(臣屬)한 자로, 당나라에서는 거란의 땅에 송막(松漠)도독부를 설치하여 굴가를 송막도독으로 삼았다. 우무위 대장군 겸 송막 도독 이진충(李盡忠,이굴가의 손자)이 거란족 송막부(松漠府) 가한(可汗)이다. 거란 영역은 동은 해남(海南 )과 백단(白檀)에 이르고 서쪽은 송막(松漠)을 넘었고, 북쪽은 황수(潢水)에 이르렀는데 해의 5부 땅이 모두 거란판적에 들어왔다. 발해 광종 대무예 19년 송막(松莫) 12성을 쌓고 또 요서 6성을 쌓으니 마침내 5경 60주 1군 38현을 소유하여 그 둘레의 너비가 9,000리였 다. 735년 송막 12성을 쌓고 요서 6성을 쌓았다. 구다에 송막 12성을 쌓은 것이다. 구다는 영고탑이 있던 적봉시 지역이다. 송막기문을 보면 아보기가 발해국을 멸망시키고 나서 장막 생활을 하는 천여 호에 이르는 명족을 연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켰고 이들 천여 호에 이르는 명족에게 논과 밭을 지급하고 장사를 할 수 있게 하였다. 분류: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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