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집은 1894~1896년의 역사적 격변기에 총리대신 직을 네 차례 맡아서 국정을 총괄하였던 조선 말엽 정상급 개혁관료였다. 조선 말기 개화당의 거두(巨頭). 초명(初名)은 굉집(宏集). 자는 경능(景能), 호는 도원(道園)ㆍ이정학재(以政學齋), 시호 충헌(忠獻). 참판(參判) 영작(永爵)의 아들. 1867년(고종 4년)에 문과에 급제, 광양 현감을 거쳐 예조 참의가 되었음. 1880년에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다. 일본 군대는 왕궁을 포위하고 대원군 을 앞세워 민씨일파를 축출하였으며, 김홍집(金弘集)을 중심으로 하는 온건개화파 의 친일정부를 수립하여 국정개혁을 단행하였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나서 제 1차 김홍집 내각이 수립되고 갑오 1차 개혁이 추진됩니다. 그때는 의정부가 남아있었고, 2차 때 의정부를 내각으로 바꾸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896년 2월11일 총리대신 김홍집이 성난 군중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분류:총리 분류:단발령 분류:개화 분류:홍련 점프 분류:훈융 진성
김홍집은 1894~1896년의 역사적 격변기에 총리대신 직을 네 차례 맡아서 국정을 총괄하였던 조선 말엽 정상급 개혁관료였다. 조선 말기 개화당의 거두(巨頭). 초명(初名)은 굉집(宏集). 자는 경능(景能), 호는 도원(道園)ㆍ이정학재(以政學齋), 시호 충헌(忠獻). 참판(參判) 영작(永爵)의 아들. 1867년(고종 4년)에 문과에 급제, 광양 현감을 거쳐 예조 참의가 되었음. 1880년에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다. 일본 군대는 왕궁을 포위하고 대원군 을 앞세워 민씨일파를 축출하였으며, 김홍집(金弘集)을 중심으로 하는 온건개화파 의 친일정부를 수립하여 국정개혁을 단행하였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나서 제 1차 김홍집 내각이 수립되고 갑오 1차 개혁이 추진됩니다. 그때는 의정부가 남아있었고, 2차 때 의정부를 내각으로 바꾸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896년 2월11일 총리대신 김홍집이 성난 군중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분류:총리 분류:단발령 분류:개화 분류:홍련 점프 분류:훈융 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