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국은 진나라를 말한다. 진공 방향을 서쪽으로 돌린 진목공은 내사 요(寥)의 계책을 이용하여 융왕(戎王)과 그 신하를 이간시켜 그 결과 섬진국에 항복해 온 유여(由餘)의 계책을 이용, 융국을 포함한 서융의 20여 개 나라를 병탄하였다. 태자 상신과 하수를 건넌 후 배를 불태워 전의를 불태운 섬진군, 섬진과 당진의 관계 악화는 곧바로 당진국에 대한 섬진국의 매년마다 계속되는 군사행동으로 그 결과가 나타났다. 당진군은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해 당진군 지휘부에서 싸움이 일어나 그 여파로 범앙(范鞅)은 섬진국으로 도망가야 했다. 초나라에게 넘긴 당진국이 기원전 589년 제나라를 안(鞍)의 싸움에서 제압하고 이어서 기원전 578년 마수(麻隧)에서 섬진국마저 제압하고 이어서 중원의 패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할 정나라 정벌전에 나서게 되었다.
섬진국은 진나라를 말한다. 진공 방향을 서쪽으로 돌린 진목공은 내사 요(寥)의 계책을 이용하여 융왕(戎王)과 그 신하를 이간시켜 그 결과 섬진국에 항복해 온 유여(由餘)의 계책을 이용, 융국을 포함한 서융의 20여 개 나라를 병탄하였다. 태자 상신과 하수를 건넌 후 배를 불태워 전의를 불태운 섬진군, 섬진과 당진의 관계 악화는 곧바로 당진국에 대한 섬진국의 매년마다 계속되는 군사행동으로 그 결과가 나타났다. 당진군은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해 당진군 지휘부에서 싸움이 일어나 그 여파로 범앙(范鞅)은 섬진국으로 도망가야 했다. 초나라에게 넘긴 당진국이 기원전 589년 제나라를 안(鞍)의 싸움에서 제압하고 이어서 기원전 578년 마수(麻隧)에서 섬진국마저 제압하고 이어서 중원의 패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할 정나라 정벌전에 나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