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dbkwik:resource/cLllwfm6wcdAXSSjG89hdA==   Sponge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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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레페의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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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인 시무어가 에드워드 6세를 낳고 죽자 헨리 8세는 다음 왕비를 찾아 나섰다. 헨리 8세가 첫 번째 왕비를 쫓아내고, 두 번째 왕비를 사형시킨데다 세 번째 왕비는 아이를 낳다 죽었으므로 헨리 8세는 악명 높은 남편감이었고, 신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때는 유럽에서 가장 풍채가 당당한 미남으로 불렸던 헨리 8세는 이제 비대한 중년 남자였지만, 외모가 뛰어난 여성만을 신부로 맞을 것이라고 못박아 두었다. 영국 성공회를 지지했던 토머스 크롬웰은 신교 국가인 클리페 공국의 앤을 지지했다. 이에 궁정화가 홀베인이 앤의 초상화를 그려 영국으로 보냈다. 초상화에 그려진 정숙하고 고요한 여인에 반한 헨리 8세는 클리브스의 앤과의 결혼을 결심했다. 이 결정에는 신교 국가와의 관계를 다져 영국 성공회의 입지를 굳히고 구교의 재기를 막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클리브스의 앤은 춤 노래, 문학, 외국어 등에 다재다능한 이상적인 르네상스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사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아 바느질 솜씨가 뛰어난 정도였다. 게다가 앤은 거의 영어를 하지 못했다. 1. * 넘겨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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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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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인 시무어가 에드워드 6세를 낳고 죽자 헨리 8세는 다음 왕비를 찾아 나섰다. 헨리 8세가 첫 번째 왕비를 쫓아내고, 두 번째 왕비를 사형시킨데다 세 번째 왕비는 아이를 낳다 죽었으므로 헨리 8세는 악명 높은 남편감이었고, 신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때는 유럽에서 가장 풍채가 당당한 미남으로 불렸던 헨리 8세는 이제 비대한 중년 남자였지만, 외모가 뛰어난 여성만을 신부로 맞을 것이라고 못박아 두었다. 영국 성공회를 지지했던 토머스 크롬웰은 신교 국가인 클리페 공국의 앤을 지지했다. 이에 궁정화가 홀베인이 앤의 초상화를 그려 영국으로 보냈다. 초상화에 그려진 정숙하고 고요한 여인에 반한 헨리 8세는 클리브스의 앤과의 결혼을 결심했다. 이 결정에는 신교 국가와의 관계를 다져 영국 성공회의 입지를 굳히고 구교의 재기를 막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클리브스의 앤은 춤 노래, 문학, 외국어 등에 다재다능한 이상적인 르네상스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사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아 바느질 솜씨가 뛰어난 정도였다. 게다가 앤은 거의 영어를 하지 못했다. 헨리 8세는 영국에 도착한 앤이 홀베인의 초상화와는 다르게 생겼다며 실망했다. 클리브스의 앤이 철저히 교육받은 아라곤의 캐서린이나 재기발랄하고 매력적인 앤 볼린과는 달리 내세울 만한 특기도 없고 무지할 정도로 순진하다는 사실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결혼식 전 왕은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면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왕은 클리브스의 앤을 겉으로는 공손히 대했지만 신하들에게는 그녀를 "플란더스 암말"이라고 부르며 뚱뚱한 추녀라고 불평했다(아이러니하게도 당대 다른 기록은 클리브스의 앤을 헨리 8세의 마지막 두 왕비 캐서린 하워드나 캐서린 파아보다 훨씬 미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헨리 8세는 앤 왕비의 어린 시녀 캐서린 하워드에게 연정을 느끼고 앤과 이혼을 결심했다. 1540년 6월 클리브스의 앤은 헨리 8세에게서 왕궁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영국에 서서히 적응해가고 있던 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헨리 8세는 클리브스의 앤과 육체관계를 맺은 적이 없으니 결혼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1. * 넘겨주기 클레페의 앤은 처음에 이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완강히 버티다 결국 굴복했다. 앤은 왕의 이혼 결정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던 캐서린 왕비가 맞았던 비참한 최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1540년 7월 9일 헨리 8세와 클레페의 앤의 결혼은 무효가 되었다. 클레페의 앤과의 결혼을 주도했던 왕의 수석 비서관 에식스 백작 토머스 크롬웰은 왕의 이혼으로 커다란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크롬웰의 정적이자 앤 볼린의 외숙 노포크 백작은 왕에게 크롬웰을 체포하도록 부추겼다. 크롬웰은 반역죄로 런던탑에 연금되었다가 왕의 이혼 절차가 끝난 후 참수되었다. 헨리 8세는 크롬웰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도록 처형을 일부러 미숙한 사형집행인의 손에 맡겼다. 솜씨가 서툰 집행인은 크롬웰의 목숨이 끊어지기까지 그를 세번이나 내리쳐야 했다. 클레페의 앤은 왕에게 협력한 대가로 영토와 연금을 하사받고 왕비가 아니라 '왕의 누이'라는 칭호를 쓸 수 있게 된다. 앤은 쫓겨난 신부라는 불명예스러운 신분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왕의 존중을 받으며 평온하게 살 수 있는 잉글랜드에 머무르는 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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