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高麗)는 918년 태조 왕건이 궁예의 태봉을 무너뜨리고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한 이후, 1392년 조선 왕조에게 멸망하기까지 약 470여 년간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불교, 고려시대는 불교와 유교, 도교, 풍수지리 등을 믿었다. 원은 고려시대에 주요 도로상에 여행자를 위해 설치한 여관으로 지방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문반과 무반의 양반 관리가 관직을 차지하였으나, 귀족이란 이들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姓)이 보편화되자 출신지를 본관(本貫)으로 정하고, 본관을 세력평가의 표준으로 삼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서자들의 손발을 묶었던 태종은 고려시대 만연했던 병축(아내를 여럿 두는 풍습)을 금지하고 적첩을 철저히 구분했다. 유교사회를 지향했던 조선은 고려 시대의 남녀상열지사를 주체로 했던 수많은 가요들을 '속'되다고 폄하했고 매장시키려 했다. 신라의 미술을 계승한 고려의 미술은 불교의 발달과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고 정교하며 귀족적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금석문은 통일신라 이전이 250점, 고려시대가 700여점이며 조선시대에 오면 급격히 늘어난다.
고려 시대(高麗)는 918년 태조 왕건이 궁예의 태봉을 무너뜨리고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한 이후, 1392년 조선 왕조에게 멸망하기까지 약 470여 년간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불교, 고려시대는 불교와 유교, 도교, 풍수지리 등을 믿었다. 원은 고려시대에 주요 도로상에 여행자를 위해 설치한 여관으로 지방통치와 교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문반과 무반의 양반 관리가 관직을 차지하였으나, 귀족이란 이들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姓)이 보편화되자 출신지를 본관(本貫)으로 정하고, 본관을 세력평가의 표준으로 삼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서자들의 손발을 묶었던 태종은 고려시대 만연했던 병축(아내를 여럿 두는 풍습)을 금지하고 적첩을 철저히 구분했다. 유교사회를 지향했던 조선은 고려 시대의 남녀상열지사를 주체로 했던 수많은 가요들을 '속'되다고 폄하했고 매장시키려 했다. 신라의 미술을 계승한 고려의 미술은 불교의 발달과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고 정교하며 귀족적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금석문은 통일신라 이전이 250점, 고려시대가 700여점이며 조선시대에 오면 급격히 늘어난다. 고려시대 금나라가 건국하기 전에 윤관은 여진을 정벌하였던 그 공에 매우 크고, 후손들인 파평 윤씨 가문이 크게 번창한 까닭에 경기도 파주에 소재한 묘역의 규모가 매우 크고 웅장하다. 분류:시대 분류: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