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문은 번한 한수 사람으로 부여 출신이다. 지금 남해현 낭하리 암벽에 신시시대의 암각서(바위에 새긴 글씨)가 있는데, 이는 부여 사람인 왕문(王文)의 전서체와 유사한 종류의 서법이다. 예서는 가로획을 중심으로하여 매우 장식적인 글씨체이다. 한자를 정서(正書)라 하고 새로 등장한 한자를 정서에 속했다 하여 예서(隸書)로 칭한다는 견해도 있으며 부여(夫餘)의 왕문(王文)이 만들었는데 정막이 사신으로 왔다가 이를 얻어 갔다고도 한다.
왕문은 번한 한수 사람으로 부여 출신이다. 지금 남해현 낭하리 암벽에 신시시대의 암각서(바위에 새긴 글씨)가 있는데, 이는 부여 사람인 왕문(王文)의 전서체와 유사한 종류의 서법이다. 예서는 가로획을 중심으로하여 매우 장식적인 글씨체이다. 한자를 정서(正書)라 하고 새로 등장한 한자를 정서에 속했다 하여 예서(隸書)로 칭한다는 견해도 있으며 부여(夫餘)의 왕문(王文)이 만들었는데 정막이 사신으로 왔다가 이를 얻어 갔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