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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 세종 야율원(遼 世宗 耶律阮, 918년 ~ 951년)은 요나라의 제3대 황제(재위: 947년 ~ 951년). 시호는 효화장헌황제(孝和莊憲皇帝)이다. 그는 요나라의 창건자 야율아보기(耶律阿保磯)의 장남이었던 황태자 야율배(耶律倍, 요 의종 문헌흠의황제(遼 義宗 文獻欽義皇帝))의 아들이었다. 그는 그의 숙부 요 태종의 사후에 즉위하였다. 요 태종은 야율아보기가 후당 왕조의 왕궁으로 떠난 뒤에 그를 길렀다.
- 요 세종 야율원(遼 世宗 耶律阮, 918년 ~ 951년)은 요나라의 제3대 황제(재위: 947년 ~ 951년). 시호는 효화장헌황제(孝和莊憲皇帝)이다. 그는 요나라의 창건자 야율아보기(耶律阿保磯)의 장남이었던 황태자 야율배(耶律倍, 요 의종 문헌흠의황제(遼 義宗 文獻欽義皇帝))의 아들이었다. 야율덕광의 형 동단국 인황왕 야율배의 아들이다. 요 태종은 야율아보기가 후당 왕조의 왕궁으로 떠난 뒤에 그를 길렀다. 그는 그의 숙부 요 태종의 사후에 즉위하였다. 이걸로 다 끝났나 싶었는데, 이 침략자 오랑캐 놈들을 한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결국에는 야율덕광도 못 버티고 후퇴했는데 요나라로 돌아가는 도중에 그만 병으로 죽어버렸답니다. 그렇게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을 본 술율평. 화친 안 하고 전국의 군사들을 다 끌고 전쟁을 벌인 걸 책망했다네요. 그렇게 태종이 저 세상으로 가고 술율평의 큰아들 야율돌욕(耶律突欲)의 아들인 야율원(耶律阮)이 요 세종이 되었답니다. 근데 황제가 되긴 했는데 저 무서운 할머니의 동의도 없이 황제가 된 게 불안하고 찝찝했던 야율원. 그래서, 군사를 이끌고 할머니를 공격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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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 세종 야율원(遼 世宗 耶律阮, 918년 ~ 951년)은 요나라의 제3대 황제(재위: 947년 ~ 951년). 시호는 효화장헌황제(孝和莊憲皇帝)이다. 그는 요나라의 창건자 야율아보기(耶律阿保磯)의 장남이었던 황태자 야율배(耶律倍, 요 의종 문헌흠의황제(遼 義宗 文獻欽義皇帝))의 아들이었다. 야율덕광의 형 동단국 인황왕 야율배의 아들이다. 요 태종은 야율아보기가 후당 왕조의 왕궁으로 떠난 뒤에 그를 길렀다. 그는 그의 숙부 요 태종의 사후에 즉위하였다. 945년, 요나라와 후진(後晋)이 한판 붙었답니다. 후진 2대 황제 출제(出帝) 석중귀(石重貴)가 그의 큰아버지 고조(高祖) 석경당(石敬瑭)과는 다르게 요나라 신하 안 하겠다는데 이 시건방진 자식을 가만히 냅둘 수야 없죠. 근데 첫 판에서는 요나라 군이 제대로 깨졌어요. 그것도 황제 님하가 직접 나섰는데 말이죠. 그래서 잔뜩 열받은 야율덕광. 그런 개쪽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술율평이 그냥 화친하라고 설득했지만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답니다. 그리고 마침 946년에 후진군이 쳐들어오네요. 이번에도 당할 수는 없는 법. 침략해 온 후진군을 박살내 버리고 그대로 후진의 수도인 개봉까지 점령해 버리고는 석중귀까지 잡아서 거란으로 압송해 버렸습니다. 이걸로 다 끝났나 싶었는데, 이 침략자 오랑캐 놈들을 한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결국에는 야율덕광도 못 버티고 후퇴했는데 요나라로 돌아가는 도중에 그만 병으로 죽어버렸답니다. 그렇게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을 본 술율평. 화친 안 하고 전국의 군사들을 다 끌고 전쟁을 벌인 걸 책망했다네요. 그렇게 태종이 저 세상으로 가고 술율평의 큰아들 야율돌욕(耶律突欲)의 아들인 야율원(耶律阮)이 요 세종이 되었답니다. 근데 황제가 되긴 했는데 저 무서운 할머니의 동의도 없이 황제가 된 게 불안하고 찝찝했던 야율원. 그래서, 군사를 이끌고 할머니를 공격했답니다. 역시나 강렬한 오랑캐의 기상.당연히 열받은 술율평도 군사를 동원해서 한판 붙었는데, 재수가 다 했는지 완전 개박살 나고 말았습니다. 뭐, 그래도 야율원에게 살해당하진 않았어요. 할머니를 죽일 만큼 버릇 없는 놈은 아니었나 봐요. 그래서 야율원의 배려로 술율평은 야율아보기의 능에 갇혔답니다. 그래도 이 쌍놈의 손자 놈이 살해되는 꼴을 보고 또 다른 손자, 그러니까 태종의 아들인 야율경(耶律璟)이 제위에 오르는 것까지 보고 죽었으니 조금은 속이 후련해졌을 거에요. 연국대장공주 야율여불고는 재능이 뛰어난 여성으로도 알려져 있고 부친인 태종 야율덕광의 비극적 죽음을 지켜보고 이후 거란의 여러 정변과 혼란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 및 준비를 한것으로 보입니다. 거란 세종 야율원의 정변 및 이후 에 일어난 야율찰할의 반정 그리고 야율옥진이 야율찰할을 제거하고 목종 야율경 추대... 목종 야율경이 야율여불고의 오빠였으니 야율여불고도 이때 다시 세력을 어느 정도 잡은듯합니다. 그리고 나서 목종이 측근들에게 시해된후 소사온 등에 의해 경종 야율현 즉위... 야율현은 세종 야율원의 아들이기도 해서 야율여불고 입장에서는 부담도 되었을듯합니다.
- 요 세종 야율원(遼 世宗 耶律阮, 918년 ~ 951년)은 요나라의 제3대 황제(재위: 947년 ~ 951년). 시호는 효화장헌황제(孝和莊憲皇帝)이다. 그는 요나라의 창건자 야율아보기(耶律阿保磯)의 장남이었던 황태자 야율배(耶律倍, 요 의종 문헌흠의황제(遼 義宗 文獻欽義皇帝))의 아들이었다. 그는 그의 숙부 요 태종의 사후에 즉위하였다. 요 태종은 야율아보기가 후당 왕조의 왕궁으로 떠난 뒤에 그를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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