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쿄(藤原京)는 694년부터 710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야마토 국에 위치해있었고 구체적으로 오늘날의 나라 현 가시하라 시에 해당한다. 그러나 일본서기에 따르면 후지와라쿄라는 이름은 결코 사용되지 않았고 당시에는 아라미시쿄(新益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있다. 2006년에 발굴 조사 결과 도시는 덴무 천황 말기인 682년부터 이미 준비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공사는 덴무 천황의 사후 잠시 중단되었다가 지토 천황에 의해 재개되었으며 694년에 공식적으로 수도를 아스카쿄에서 후지와라쿄로 이전하였다. 후지와라쿄는 몬무 천황과 겐메이 천황의 통치하에 수도로서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었다. 겐메이 천황이 710년에 수도를 나라의 헤이조쿄로 옮기면서 나라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곳은 황실의 신토 의식과 제사를 담당한 나카토미 씨의 영지였다. 도시는 나라로 수도를 옮긴 지 1년 후인 711년에 불탔고 이후 재건되지 않았다. 1934년에 고고학적인 발굴이 시작되었고 궁전의 일부가 재건되었다.
후지와라쿄(藤原京)는 694년부터 710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야마토 국에 위치해있었고 구체적으로 오늘날의 나라 현 가시하라 시에 해당한다. 그러나 일본서기에 따르면 후지와라쿄라는 이름은 결코 사용되지 않았고 당시에는 아라미시쿄(新益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있다. 2006년에 발굴 조사 결과 도시는 덴무 천황 말기인 682년부터 이미 준비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공사는 덴무 천황의 사후 잠시 중단되었다가 지토 천황에 의해 재개되었으며 694년에 공식적으로 수도를 아스카쿄에서 후지와라쿄로 이전하였다. 후지와라쿄는 몬무 천황과 겐메이 천황의 통치하에 수도로서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었다. 겐메이 천황이 710년에 수도를 나라의 헤이조쿄로 옮기면서 나라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후지와라쿄는 일본 최초로 바둑판 형태로 구획된 수도로 당나라 장안을 모방하였다. 최근 발굴 조사 결과 도시는 약 5km x 5km 크기로 예전에 생각했던 것에 비해 더 컸음이 밝혀졌다. 궁전인 등원궁(藤原宮)은 약 1km²를 차지했으며 5m 높이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네 방향의 벽은 각각 세 개의 문을 가지고 있었었고 남쪽 벽 중심에 있는 주작문(朱雀門)이 중심문이었다. 대극전(大極殿)과 기타 궁전 건물들은 중국 양식의 기와를 사용한 일본 최초의 궁전 건물이다. 이곳은 황실의 신토 의식과 제사를 담당한 나카토미 씨의 영지였다. 도시는 나라로 수도를 옮긴 지 1년 후인 711년에 불탔고 이후 재건되지 않았다. 1934년에 고고학적인 발굴이 시작되었고 궁전의 일부가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