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송(柳致松, 1924년 10월 7일 경기도 평택 ~ 2006년 6월 2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48년 신익희 국회의장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하였고,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민정당 후보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원내에 입성했다. 이 후 2번 낙선했지만 1973년의 제9대 총선과 1977년의 제10대 총선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연속 당선되면서 재기한다. 1981년 12월 21일 제5공화국 헌법 발효와 함께 기존의 모든 정당들이 해산되자, 당시 정치활동 금지를 받지 않은 정치인들을 규합하여 민주한국당을 창당하였다. 민한당이 1981년의 제11대 총선에서는 여당인 민주정의당에 이어 원내 제2당이 됨에 따라서 제1야당의 총재가 되었다. 당시 김영삼, 김대중 등 유력 야당 정치인들이 모두 정치활동이 금지된 상황에서, 군부 출신의 전두환 정부 아래에서 온건한 노선을 견지하였으므로 어용 야당의 정치인으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1985년 1월 창당된 신한민주당이 제12대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부상함에 따라 민한당은 군소정당으로 밀려났으며,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소속의원 전원이 낙선함에 따라 유치송은 정계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유치송(柳致松, 1924년 10월 7일 경기도 평택 ~ 2006년 6월 2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48년 신익희 국회의장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하였고,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민정당 후보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원내에 입성했다. 이 후 2번 낙선했지만 1973년의 제9대 총선과 1977년의 제10대 총선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연속 당선되면서 재기한다. 1981년 12월 21일 제5공화국 헌법 발효와 함께 기존의 모든 정당들이 해산되자, 당시 정치활동 금지를 받지 않은 정치인들을 규합하여 민주한국당을 창당하였다. 민한당이 1981년의 제11대 총선에서는 여당인 민주정의당에 이어 원내 제2당이 됨에 따라서 제1야당의 총재가 되었다. 당시 김영삼, 김대중 등 유력 야당 정치인들이 모두 정치활동이 금지된 상황에서, 군부 출신의 전두환 정부 아래에서 온건한 노선을 견지하였으므로 어용 야당의 정치인으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1985년 1월 창당된 신한민주당이 제12대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부상함에 따라 민한당은 군소정당으로 밀려났으며,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소속의원 전원이 낙선함에 따라 유치송은 정계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