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金龍樹)는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서기 603년 김춘추가 출생하였는데 어머니는 천명 부인으로 화랑세기 필사본에 의하면 진평왕의 장녀라고 하나 삼국사기에 덕만 공주가 장녀라 기록되므로 어느 것이 정확한지 불명이다. 천명 공주는 김춘추의 출생연대로 보아 약16세에서 22세경 이전인 서기582년에서 578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보이는데, 화랑세기의 기록으로 보면 서기596년에 화랑의 주인인 화주가 되었다 하므로 최소한 15세가 된 것으로 보아 서기 582년에 출생한 것이 된다. 서기 596년부터 서기 603년까지 김용춘이 화랑 풍월주로서 천명의 남편이 되었다. 김용춘은 김용수의 뒤에 천명을 부인으로 삼았기 때문에 김춘추가 서기603년에 태어났다. 일인다명설은 한 사람이 세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고 본 것으로 김용춘, 김용수, 혹은 비형랑은 화랑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의견으로는 화랑세기에 보면 형수(兄理)를 취(要)하여 사는 형제처 (免弟妻)가 제도화되어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으로 보는 견해이다. 김용수는 동생보다 먼저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동생인 용춘(龍春)에게 아내 천명 공주와 아들 춘추를 맡겼다.
김용수(金龍樹)는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서기 603년 김춘추가 출생하였는데 어머니는 천명 부인으로 화랑세기 필사본에 의하면 진평왕의 장녀라고 하나 삼국사기에 덕만 공주가 장녀라 기록되므로 어느 것이 정확한지 불명이다. 천명 공주는 김춘추의 출생연대로 보아 약16세에서 22세경 이전인 서기582년에서 578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보이는데, 화랑세기의 기록으로 보면 서기596년에 화랑의 주인인 화주가 되었다 하므로 최소한 15세가 된 것으로 보아 서기 582년에 출생한 것이 된다. 서기 596년부터 서기 603년까지 김용춘이 화랑 풍월주로서 천명의 남편이 되었다. 김용춘은 김용수의 뒤에 천명을 부인으로 삼았기 때문에 김춘추가 서기603년에 태어났다. 일인다명설은 한 사람이 세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고 본 것으로 김용춘, 김용수, 혹은 비형랑은 화랑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의견으로는 화랑세기에 보면 형수(兄理)를 취(要)하여 사는 형제처 (免弟妻)가 제도화되어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으로 보는 견해이다. 김용수는 동생보다 먼저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동생인 용춘(龍春)에게 아내 천명 공주와 아들 춘추를 맡겼다. 520년 23대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면서 왕궁에 사는 왕과 왕의 부모 형제, 왕의 자식을 성골로 정했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손자로서 아버지 김용수가 왕위를 계승했으면, 자동적으로 성골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지왕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진골로 떨어졌다[族降]. 선덕 여왕의 언니인 천명 공주는 원래 성골이었으나 춘추의 아버지 용수와 결혼하여 왕궁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진골로 떨어졌다. 덕만 공주(선덕 여왕)와 그녀의 사촌 승만 공주(진덕 여왕)는 왕궁 안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성골 신분을 유지하여 여자로서 왕위에 오를 수도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