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힐은 황제의 사관이였다. 황제(黃帝) 시대에는 문물이 점차 번잡해져서 문자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사관 창힐로 하여금 상형 문자(象形文字)를 만들게 하였다. 이 전설적인 말을 믿을 근거가 없으나, 대개 이 시대에 상형 문자의 체계가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금수의 발자국과 거북 등의 무늬에서 착상하여 초보적인 문자의 체계를 잡았다. 또한 새 발자국 모양을 따서 조적서(鳥跡書)를 만들었는다고 하며, 현재 그의 고향 섬서성 백수현 사관촌에 그 비석이 남아있다.
창힐은 황제의 사관이였다. 황제(黃帝) 시대에는 문물이 점차 번잡해져서 문자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사관 창힐로 하여금 상형 문자(象形文字)를 만들게 하였다. 이 전설적인 말을 믿을 근거가 없으나, 대개 이 시대에 상형 문자의 체계가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금수의 발자국과 거북 등의 무늬에서 착상하여 초보적인 문자의 체계를 잡았다. 또한 새 발자국 모양을 따서 조적서(鳥跡書)를 만들었는다고 하며, 현재 그의 고향 섬서성 백수현 사관촌에 그 비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