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위총의 난[趙位寵 ── 亂]은 고려 중기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이 집권무인에 반대하여 일으킨 반란이다. 무신 정권 초기(이의방 집정시절)에 무신정권을 가장 위태롭게 했던 또하나의 반란이 일어난다. 1174년에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은 국왕을 폐립하고 문신을 학살해 전횡을 일삼던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을 타도하려고 반란하였다. 1174년(명종 4) 서경유수·병부상서인 조위총이 북계의 여러 성에 격문을 보내 "소문을 듣건대 개경의 중방(重房)에서 근래 북계의 여러 성 대부분이 억세고 거칠어져 토벌해야 한다고 논의하고 군사를 이미 크게 발했다 한다. 그런데 어찌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 죽음을 당하겠는가. 그러므로 각 성은 병마(兵馬)를 규합하여 서경으로 속히 오라"라고 했다. 이에 연주성(延州城)만을 제외한 절령(岊嶺) 이북의 40여 성이 모두 호응해왔다.
조위총의 난[趙位寵 ── 亂]은 고려 중기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이 집권무인에 반대하여 일으킨 반란이다. 무신 정권 초기(이의방 집정시절)에 무신정권을 가장 위태롭게 했던 또하나의 반란이 일어난다. 1174년에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은 국왕을 폐립하고 문신을 학살해 전횡을 일삼던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을 타도하려고 반란하였다. 1174년(명종 4) 서경유수·병부상서인 조위총이 북계의 여러 성에 격문을 보내 "소문을 듣건대 개경의 중방(重房)에서 근래 북계의 여러 성 대부분이 억세고 거칠어져 토벌해야 한다고 논의하고 군사를 이미 크게 발했다 한다. 그런데 어찌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 죽음을 당하겠는가. 그러므로 각 성은 병마(兵馬)를 규합하여 서경으로 속히 오라"라고 했다. 이에 연주성(延州城)만을 제외한 절령(岊嶺) 이북의 40여 성이 모두 호응해왔다. 그러자 조위총은 1170년에 일어난 무인정변 이후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을 제거하고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거병했다. 이의방이 죽자 그의 측근들과 수하들도 모두 죽거나 유배되었다. 서경이 함락되고 조위총과 그 측근 인물 10여 명이 사로잡히면서 2년 가까이 끌던 조위총의 난은 일단 진압되었다. 그 후 조위총의 잔당들이 몇 차례 난을 일으켰으나 모두 진압되었다. 조위총의 난은 22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어 그 영향이 적지 않았는데, 무신정권에 대한 문신의 반란이 결국 실패하였다. 분류: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