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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랑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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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랑홀은 고조선의 수도중의 하나였다. 단군 왕검은 나라를 다스린지 40여 년만에 설유(兪)의 난이 있었다. 설유는 험윤의 족속으로 홍수를 만났을 때는 요행히 그 해를 면하더니, 물과 흙이 겨우 안정을 되찾은 뒤 마을과 고을이 쓸쓸해진 것을 보고는 이내 그 틈을 타고 동쪽으로 침략해 오니 그 기세가 자못 맹렬하였는데, 곧 부여로 하여금 안팎의 모든 병사를 모아 그를 토벌하여 평정케 하였다. 이에 부여에게 북방의 땅을 더하여 봉하고 우수홀(牛首忽)에 자리잡게 하였으며, 부루로 하여금 임검성(壬儉城)에 거처하게 하고, 부소에게는 낙랑홀을 다스리게 하고, 부우는 당장경을 살펴보게 하였으며, 고시씨는 그 봉토를 고쳐 남쪽의 땅에 봉하였다. 이암의 단군세기에 따르면 23대 아홀 단군때 제(帝)의 숙부 고불가에게 낙랑홀을 통치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규원사화에서 34세 오루문(奧婁門) 단군은 낙랑홀(樂浪忽)로 천도한다. 2세 부루 단군 때, 환도 산성, 22세 색불루 단군 때, 요동 험독현 창려, 34세 오루문 단군 때, 낙랑홀(지금 평양), 44세 구물단군 때, 장당경으로 각기 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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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랑홀은 고조선의 수도중의 하나였다. 단군 왕검은 나라를 다스린지 40여 년만에 설유(兪)의 난이 있었다. 설유는 험윤의 족속으로 홍수를 만났을 때는 요행히 그 해를 면하더니, 물과 흙이 겨우 안정을 되찾은 뒤 마을과 고을이 쓸쓸해진 것을 보고는 이내 그 틈을 타고 동쪽으로 침략해 오니 그 기세가 자못 맹렬하였는데, 곧 부여로 하여금 안팎의 모든 병사를 모아 그를 토벌하여 평정케 하였다. 이에 부여에게 북방의 땅을 더하여 봉하고 우수홀(牛首忽)에 자리잡게 하였으며, 부루로 하여금 임검성(壬儉城)에 거처하게 하고, 부소에게는 낙랑홀을 다스리게 하고, 부우는 당장경을 살펴보게 하였으며, 고시씨는 그 봉토를 고쳐 남쪽의 땅에 봉하였다. 이암의 단군세기에 따르면 23대 아홀 단군때 제(帝)의 숙부 고불가에게 낙랑홀을 통치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규원사화에서 34세 오루문(奧婁門) 단군은 낙랑홀(樂浪忽)로 천도한다. 2세 부루 단군 때, 환도 산성, 22세 색불루 단군 때, 요동 험독현 창려, 34세 오루문 단군 때, 낙랑홀(지금 평양), 44세 구물단군 때, 장당경으로 각기 천도하였다. 단군조선 당시 낙랑홀(樂浪忽)주민들이 기원전 239년 단군조선이 망한 후 동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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