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왕 (定康王~887)은 신라의 제50대 왕(886~887 재위)이였다. 이름은 황(晃).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고, 헌강왕의 동생이다. 할아버지는 희강왕의 아들로 의공대왕(懿恭大王)으로 추봉된 계명(啓明)이고, 할머니는 광의왕태후(光義王太后)로 추봉된 광화부인(光和夫人)이다. 원년 8월, 이찬 준흥을 시중으로 임명하였다. 서쪽 지방에 가뭄이 들어 황폐하였다. 산문(山門) 밖에서 두 개의 시내가 만난다 하여 신라 제50대 정강왕이 쌍계사(雙磎寺)라는 절 이름을 내리게 되었다. 2년 봄 정월, 황룡사에 백고좌를 하였다. 진감선사비는 정강왕 2년(887)에 왕의 교지를 받들어 선사가 입적한 지 37년 후에 세워졌으며 고운 선생이 비문을 짓고 글씨도 썼다. 진성여왕의 오빠로 몸이 약해서 즉위 2년만에 죽으며 만을 왕으로 세울 것을 이르자 그대로 하였다. 진성 여왕은 성은 김, 휘는 만(曼) 또는 원(垣)으로 경문왕과 문의왕후 김씨의 딸이자 헌강왕과 정강왕의 여동생이였다. 정강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서거하자 정강왕의 유언에 따라 887년 음력 7월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정강왕 (定康王~887)은 신라의 제50대 왕(886~887 재위)이였다. 이름은 황(晃).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고, 헌강왕의 동생이다. 할아버지는 희강왕의 아들로 의공대왕(懿恭大王)으로 추봉된 계명(啓明)이고, 할머니는 광의왕태후(光義王太后)로 추봉된 광화부인(光和夫人)이다. 원년 8월, 이찬 준흥을 시중으로 임명하였다. 서쪽 지방에 가뭄이 들어 황폐하였다. 산문(山門) 밖에서 두 개의 시내가 만난다 하여 신라 제50대 정강왕이 쌍계사(雙磎寺)라는 절 이름을 내리게 되었다. 2년 봄 정월, 황룡사에 백고좌를 하였다. 진감선사비는 정강왕 2년(887)에 왕의 교지를 받들어 선사가 입적한 지 37년 후에 세워졌으며 고운 선생이 비문을 짓고 글씨도 썼다. 진성여왕의 오빠로 몸이 약해서 즉위 2년만에 죽으며 만을 왕으로 세울 것을 이르자 그대로 하였다. 진성 여왕은 성은 김, 휘는 만(曼) 또는 원(垣)으로 경문왕과 문의왕후 김씨의 딸이자 헌강왕과 정강왕의 여동생이였다. 정강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서거하자 정강왕의 유언에 따라 887년 음력 7월에 왕위를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