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혁(傅奕 554~639) 수에서 당에 걸쳐 활약한 도교의 도사. 북주의 폐불 때 통도관학사가 되었으며 후에 도사가 되었다. 수말-당초 때 부혁(傅奕)이란 인물이 항우의 첩 무덤에서 얻은 필사본을 토대로 정리했다는 노자고본편 (老子古本篇) 등이 있다. 단지 부혁 스스로가 일찍이 음탕한 일을 행하였으니, 그 무리들이 줄지어 처첩을 둔 예가 있었다. 무덕(武德) 원년(618)에 다시 불교로 돌아와, 경사(京師)의 제법사(濟法寺)에서 살았다. 때에 태사(太史) 부혁(傅奕)이 11조의 항목을 들어 불법의 폐지를 주장하자. 『파사론(破邪論)』 1권을 지어 그 부당성을 논파한다. 회창의 법난으로 불교계는 마치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가 되었는데 이와 같은 이유는 당 고조 때 부혁(傅奕)과, 무종 때의 도사 조귀진(趙歸眞)의 배불론, 그리고 국가 재정상의 문제와 사도승(私度僧)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제 부혁(傳奔)이 어리석고 우매하기 그지없어서 스님들을 까까머리라고 꾸절음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분류:당나라 사람
부혁(傅奕 554~639) 수에서 당에 걸쳐 활약한 도교의 도사. 북주의 폐불 때 통도관학사가 되었으며 후에 도사가 되었다. 수말-당초 때 부혁(傅奕)이란 인물이 항우의 첩 무덤에서 얻은 필사본을 토대로 정리했다는 노자고본편 (老子古本篇) 등이 있다. 단지 부혁 스스로가 일찍이 음탕한 일을 행하였으니, 그 무리들이 줄지어 처첩을 둔 예가 있었다. 무덕(武德) 원년(618)에 다시 불교로 돌아와, 경사(京師)의 제법사(濟法寺)에서 살았다. 때에 태사(太史) 부혁(傅奕)이 11조의 항목을 들어 불법의 폐지를 주장하자. 『파사론(破邪論)』 1권을 지어 그 부당성을 논파한다. 회창의 법난으로 불교계는 마치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가 되었는데 이와 같은 이유는 당 고조 때 부혁(傅奕)과, 무종 때의 도사 조귀진(趙歸眞)의 배불론, 그리고 국가 재정상의 문제와 사도승(私度僧)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제 부혁(傳奔)이 어리석고 우매하기 그지없어서 스님들을 까까머리라고 꾸절음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분류:당나라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