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도감 (大藏都監)은 고려 관청이다. 고려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을 판각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했던 관청. 1232년(고종 19) 몽골 침략 때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불타버리자, 계속 침입해오는 몽골군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을 다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1236년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본사는 피난 도읍지인 강화에 두고, 분사는 진주(晉州) 관내의 남해현(南海縣)에 두어 판각에 분담, 착수했다. 안찰사와 진주목 부사 등이 분사도감의 직임을 겸해 판각에 필요한 물자조달을 원활하게 했다. 그리하여 착수한 지 16년 만인 1251년 9월에 대장경 판각작업을 완료했는데, 이 대장경이 오늘날 해인사에 남아 있는 재조대장경, 즉 팔만대장경이다. 대장도감은 그뒤에도 없어지지 않고 기구가 축소되어 대장경 판당의 경판보존과 대장경을 인출하는 업무를 담당하다가 1318년경에 이르러 폐지되었다.
대장도감 (大藏都監)은 고려 관청이다. 고려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을 판각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했던 관청. 1232년(고종 19) 몽골 침략 때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불타버리자, 계속 침입해오는 몽골군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을 다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1236년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본사는 피난 도읍지인 강화에 두고, 분사는 진주(晉州) 관내의 남해현(南海縣)에 두어 판각에 분담, 착수했다. 안찰사와 진주목 부사 등이 분사도감의 직임을 겸해 판각에 필요한 물자조달을 원활하게 했다. 그리하여 착수한 지 16년 만인 1251년 9월에 대장경 판각작업을 완료했는데, 이 대장경이 오늘날 해인사에 남아 있는 재조대장경, 즉 팔만대장경이다. 대장도감은 그뒤에도 없어지지 않고 기구가 축소되어 대장경 판당의 경판보존과 대장경을 인출하는 업무를 담당하다가 1318년경에 이르러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