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추(納哈出, 납합출, ? ~ 1388년)은 원나라의 장군이다. 나하추는 본래 대대로 요동 지방의 군 지휘관을 역임한 집안의 출신이었다. 원 말기가 되자 스스로 행성승상(行省丞相)을 칭하고 만주 지방에서 세력을 떨쳤다. 아유시리다르는 계속 명나라를 북에서 압박하였는데 만주의 잘라이르의 나하추와 협력하였다. 공민왕 11년인 1362년, 심양행성승상(審陽行省丞相)을 자처한 원나라 장수 나하추(納哈出)가 고려에게 빼앗긴 쌍성총관부를 되찾고자 군사를 일으켜 함경도 홍원 지방으로 쳐들어왔다. 1362년 2월부터 7월까지 요동의 몽골 대군벌 나하추가 쌍성총관부 잔당 조소생과 함께 고려의 동북면(현재 함경도 지역)을 침입하였다가 이성계의 고려군에게 패주하였던 이 사건으로 인하여 쌍성총관부의 잔당 조소생, 탁도경 세력이 완전 몰락했다. 고려 정부에서는 이성계를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삼아 적을 막게 하였다. 여러 차례의 격전 끝에 마침내 함흥 평야에서 원나라 군대를 격퇴시켜 명성을 크게 떨쳤다. 적장인 나하추마저 이성계의 뛰어난 용맹과 탁월한 군사적 재능에 감탄하며 깊이 존경할 정도였다.
나하추(納哈出, 납합출, ? ~ 1388년)은 원나라의 장군이다. 나하추는 본래 대대로 요동 지방의 군 지휘관을 역임한 집안의 출신이었다. 원 말기가 되자 스스로 행성승상(行省丞相)을 칭하고 만주 지방에서 세력을 떨쳤다. 아유시리다르는 계속 명나라를 북에서 압박하였는데 만주의 잘라이르의 나하추와 협력하였다. 공민왕 11년인 1362년, 심양행성승상(審陽行省丞相)을 자처한 원나라 장수 나하추(納哈出)가 고려에게 빼앗긴 쌍성총관부를 되찾고자 군사를 일으켜 함경도 홍원 지방으로 쳐들어왔다. 1362년 2월부터 7월까지 요동의 몽골 대군벌 나하추가 쌍성총관부 잔당 조소생과 함께 고려의 동북면(현재 함경도 지역)을 침입하였다가 이성계의 고려군에게 패주하였던 이 사건으로 인하여 쌍성총관부의 잔당 조소생, 탁도경 세력이 완전 몰락했다. 고려 정부에서는 이성계를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삼아 적을 막게 하였다. 여러 차례의 격전 끝에 마침내 함흥 평야에서 원나라 군대를 격퇴시켜 명성을 크게 떨쳤다. 적장인 나하추마저 이성계의 뛰어난 용맹과 탁월한 군사적 재능에 감탄하며 깊이 존경할 정도였다. 이후 공민왕은 그에게 정1품 작위인 삼중대광사도(三重大匡司徒)를 하사하였다. 원이 몽골 고원으로 쫓겨나 북원이 된 이후 그는 공민왕과 이성계에게 예물을 보내 화친을 맺었다. 그러나 1387년 나하추가가 기근으로 나하추는 명나라에 투항하여 해서후(海西侯)에 봉해졌다. 이후 운남(윈난, 雲南)정벌에 나섰다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함경남도 홍원군에는 이성계가 조선 건국 전에 원나라 장수 나하추와 싸워 이겼던 달단동 전적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