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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흥강(龍興江)은 함경남도 동부를 흐르는 강으로 낭림산맥내 함경남도 고원군 운곡면의 각고산(角高山, 1,038m) 남쪽에서 발원하여 영흥평야를 관류하며 송전만(松田灣)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길이 134.8㎞, 유역 면적 3,397㎢이다. 요덕군을 거쳐 금야군의 남동부 해중리와 광덕리 사이에서 송전만에 유입되는 강 옛날에 횡강으로 부르다가 후에 용흥강으로 되었으며 그 후 영흥군이 금야군으로 개칭될 때 강이름이 금야강으로 되었다. 신라의 북쪽 경계는 함남 용흥강까지였고 함흥은 그 위였다. 당시 함흥이 속해 있던 나라는 다름 아닌 발해였다. 역사에 기록돼 있지 않은 화령국은 발해 남쪽의 정치집단이었던 것이다. 발해는 서쪽으로 요동반도, 북쪽으로 송화강, 남쪽으로 대동강과 용흥강을 잇는 선까지 미쳤다. 넓은 영토에는 5경 15부 62주를 두어 다스렸고, 그 중심지마다 성을 쌓아 통치의 거점으로 삼았다. 동해로 흐르는 강은 북한의 두만강이 가장 유명하고 남한에서는 울산의 태화강, 형산강 유명하며, 북한의 남대천, 성천강, 용흥강, 어랑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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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용흥강(龍興江)은 함경남도 동부를 흐르는 강으로 낭림산맥내 함경남도 고원군 운곡면의 각고산(角高山, 1,038m) 남쪽에서 발원하여 영흥평야를 관류하며 송전만(松田灣)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길이 134.8㎞, 유역 면적 3,397㎢이다. 요덕군을 거쳐 금야군의 남동부 해중리와 광덕리 사이에서 송전만에 유입되는 강 옛날에 횡강으로 부르다가 후에 용흥강으로 되었으며 그 후 영흥군이 금야군으로 개칭될 때 강이름이 금야강으로 되었다. 신라의 북쪽 경계는 함남 용흥강까지였고 함흥은 그 위였다. 당시 함흥이 속해 있던 나라는 다름 아닌 발해였다. 역사에 기록돼 있지 않은 화령국은 발해 남쪽의 정치집단이었던 것이다. 발해는 서쪽으로 요동반도, 북쪽으로 송화강, 남쪽으로 대동강과 용흥강을 잇는 선까지 미쳤다. 넓은 영토에는 5경 15부 62주를 두어 다스렸고, 그 중심지마다 성을 쌓아 통치의 거점으로 삼았다. 1920년대 함경남도 용흥강에서 알을 채집하여 전국의 저수지에 이식한 빙어는 현재 소양호와 춘천호 등 전국의 큰 호수에서 서식하고 있다. 순수 토종 빙어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국내 최고의 저수지 충북 제천의 의림지에서만 서식하며 낚시가 금지되어 있다. 옛날에는 이 물고기를 과어(瓜魚)라고 했는데 오이향이 난다고 해서 오이 과(瓜)를 붙였던 것이다. 빙어는 댐이나 저수지 깊은 곳은 한여름에도 수온이 낮게 유지 되기 때문에 살수있고 여름에는 수온이 낮은 깊은 곳에 살다가 겨울이 되어 동해로 흐르는 강은 북한의 두만강이 가장 유명하고 남한에서는 울산의 태화강, 형산강 유명하며, 북한의 남대천, 성천강, 용흥강, 어랑천 등이 있다. 용흥강이라는 이름은 태종때 이곳에 온 하륜이 여기가 환조의 복거지요, 태조가 출생한 고장이니 이름을 용흥강이라 하자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사자는 극력으로 함흥차사(咸興差使)를 죽일 것을 청하였다. 태조는 그가 용흥강(龍興江)을 이미 건너갔으리라고 생각되므로 사자(使者)에게 칼을 주면서 이르기를 '만약 이미 강을 건넜거든 쫓지 말라.'하였다. 박순은 병이 나서 중도에서 체류하였다가,이 때에 겨우 강에 도착하여 아직 용흥강을 건너기 전이었고, 결국 사자가 박순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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