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흔국(臣釁國)은 삼한 때에, 마한에 속하여 있던 나라의 하나였다. 삼한, 삼국시대 삼한시대에는 대전시 유성구에 마한 신흔국(신첩국, 臣疊國)을 이루었다. 백제시대에는 우술군(雨述郡)과 황등야군(黃等也郡)에 속하였다. 757년, 신라의 삼국통일 후 비풍군(比豊郡)과 황산군(黃山郡)에 속하였다. 음운상의 유사함을 근거로 백제 진현현(鎭峴縣)에 비정하는 견해가 일찍 제기되었는데, 진현현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황산군(黃山郡) 속현 진령현(鎭嶺縣)으로 지금의 대전광역시 일대이다. 대전시사에 따르면 신흔국의 위치는 유성구 빈계산(牝鷄山) 자락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한54국 중 신흔국이라는 부족국가도 있었다고 하니, 이러한 주거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주변의 하천과, 분지긴 하나 평평한 땅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분류:마한
신흔국(臣釁國)은 삼한 때에, 마한에 속하여 있던 나라의 하나였다. 삼한, 삼국시대 삼한시대에는 대전시 유성구에 마한 신흔국(신첩국, 臣疊國)을 이루었다. 백제시대에는 우술군(雨述郡)과 황등야군(黃等也郡)에 속하였다. 757년, 신라의 삼국통일 후 비풍군(比豊郡)과 황산군(黃山郡)에 속하였다. 음운상의 유사함을 근거로 백제 진현현(鎭峴縣)에 비정하는 견해가 일찍 제기되었는데, 진현현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황산군(黃山郡) 속현 진령현(鎭嶺縣)으로 지금의 대전광역시 일대이다. 대전시사에 따르면 신흔국의 위치는 유성구 빈계산(牝鷄山) 자락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한54국 중 신흔국이라는 부족국가도 있었다고 하니, 이러한 주거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주변의 하천과, 분지긴 하나 평평한 땅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분류: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