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보(雅樂譜)는 아악의 곡을 적은 악보 또는 그런 책이다. 정리 작업에 앞서 중국의 고전들을 통해 참고자료를 확보했으며, 악기도감에서는 악기를 만들고 아악보를 정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연은 당시까지 수입되던 악기들을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었다. 1430년(34세, 세종 12년) 12월 아악보를 이룩하였다. 세종실록악보는 중국에 남아있는 고악보(古樂譜)들과 비교해 보아도 상당히 발전된 악보임을 알 수 있다. 아악보에는 정간보를 사용하지 않았다. 정간보는 불규칙한 시가를 가진 향악보의 기보에 아주 적합한 것이었다. 중국의 아악서와 이론서를 참고하여 아악 및 아악보를 새로 만들었다. 세종대왕은 정간보를 창안하여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를 개발했다. 정간보는 1행을 32간으로 질러 정 자처럼 만들어 그 속에 율명을 기보하여 음의 고저, 장단까지 표현 가능하도록 했으며, 세조 때는 1행을 16간으로 개량하고 오음 약보를 창안했다.
아악보(雅樂譜)는 아악의 곡을 적은 악보 또는 그런 책이다. 정리 작업에 앞서 중국의 고전들을 통해 참고자료를 확보했으며, 악기도감에서는 악기를 만들고 아악보를 정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연은 당시까지 수입되던 악기들을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었다. 1430년(34세, 세종 12년) 12월 아악보를 이룩하였다. 세종실록악보는 중국에 남아있는 고악보(古樂譜)들과 비교해 보아도 상당히 발전된 악보임을 알 수 있다. 아악보에는 정간보를 사용하지 않았다. 정간보는 불규칙한 시가를 가진 향악보의 기보에 아주 적합한 것이었다. 중국의 아악서와 이론서를 참고하여 아악 및 아악보를 새로 만들었다. 세종대왕은 정간보를 창안하여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를 개발했다. 정간보는 1행을 32간으로 질러 정 자처럼 만들어 그 속에 율명을 기보하여 음의 고저, 장단까지 표현 가능하도록 했으며, 세조 때는 1행을 16간으로 개량하고 오음 약보를 창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