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모산(東牟山)은 발해의 첫 서울로 동모 산성을 말하기도 한다. 기록에 보면 698년 대조영(大祚榮)이 동모산 기슭, 지금의 지린 성[吉林省] 둔화[敦化]에 진국(震國 : 또는 振國)을 세웠다. 여러 소수 민족들이 전쟁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던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길림성의 돈화시 동모산 기슭에 나라를 건국하였다. 조영은 곧 걸사바우의 무리를 아울러서 읍루의 동모산에 거처했다. 그러자 말갈과 고구려의 옛 사람들이 모두 다 돌아왔다. 만주 동부 지방에 남아 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규합하여, 698년 길림성 돈화현(敦化縣) 부근의 동모산(東牟山) 기슭에 고구려유민을 이끌고 진국(震國 혹은 振國)을 세웠다. 동북의 속말부수령 대조영이 동모산에 대진왕국(大震王國)을 세워 5경 15부 62주를 두고 영토가 조선 반도 북부, 동해에 이르렀다. 제 3대 문왕(文王)은 구국(舊國)인 동모산에서 742년, 중경 현덕부로 수도를 옮겼다. 해동성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영하였다가 거란족에게 멸망하고 만다. 공원(公元) 926년 멸망하였으므로 229년간 존속했다.
동모산(東牟山)은 발해의 첫 서울로 동모 산성을 말하기도 한다. 기록에 보면 698년 대조영(大祚榮)이 동모산 기슭, 지금의 지린 성[吉林省] 둔화[敦化]에 진국(震國 : 또는 振國)을 세웠다. 여러 소수 민족들이 전쟁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던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길림성의 돈화시 동모산 기슭에 나라를 건국하였다. 조영은 곧 걸사바우의 무리를 아울러서 읍루의 동모산에 거처했다. 그러자 말갈과 고구려의 옛 사람들이 모두 다 돌아왔다. 만주 동부 지방에 남아 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규합하여, 698년 길림성 돈화현(敦化縣) 부근의 동모산(東牟山) 기슭에 고구려유민을 이끌고 진국(震國 혹은 振國)을 세웠다. 동북의 속말부수령 대조영이 동모산에 대진왕국(大震王國)을 세워 5경 15부 62주를 두고 영토가 조선 반도 북부, 동해에 이르렀다. 제 3대 문왕(文王)은 구국(舊國)인 동모산에서 742년, 중경 현덕부로 수도를 옮겼다. 해동성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영하였다가 거란족에게 멸망하고 만다. 공원(公元) 926년 멸망하였으므로 229년간 존속했다. 발해 고분군이라는 비석이 보였다.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 서쪽으로 멀리 높은산 하나가 보였는데 바로 동모산이 된다. 일행은 멋모르고 계속 산비탈을 따라 내렸는데 여기저기 흩어진 돌무지들을 발견하였다. 궁터와 같은 정연한 주춧돌 등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서쪽 5㎞ 지점에 발해 최초 산성인 동모산이 있는 점을 들어 도성터로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