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300px|레오니다스 1세 레오니다스 1세(그리스어: Λεωνίδας ο Α')는 고대 그리스어로 ‘사자의 아들’이란 뜻으로, 아길라드 왕조 출신의 제17대 스파르타 국왕이자 헤라클레스의 후예로 추앙받던 아낙산드리다스 2세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레오니다스의 출생 날짜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기원전 480년 8월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것만이 그의 유일하게 확인된 기록이다. 스파르타 연구자이자 역사가인 Paul Cartledge는 레오니다스의 출생 날짜를 기원전 540년으로 좁혔다. 만약 그의 가정이 맞다고 추론한다면 레오니다스는 기원전 540년 어느 날에 태어났을 것이다). 기원전 489년 또는 기원전 488년경 레오니다스는 자신의 배다른 형제인 클레오메네스 1세의 뒤를 이어 스파르타의 왕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클레오메네스의 딸인 고르고와 결혼하였다. 그가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함으로 그의 이름은 유명해져 후세에까지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
thumb|300px|레오니다스 1세 레오니다스 1세(그리스어: Λεωνίδας ο Α')는 고대 그리스어로 ‘사자의 아들’이란 뜻으로, 아길라드 왕조 출신의 제17대 스파르타 국왕이자 헤라클레스의 후예로 추앙받던 아낙산드리다스 2세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레오니다스의 출생 날짜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기원전 480년 8월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것만이 그의 유일하게 확인된 기록이다. 스파르타 연구자이자 역사가인 Paul Cartledge는 레오니다스의 출생 날짜를 기원전 540년으로 좁혔다. 만약 그의 가정이 맞다고 추론한다면 레오니다스는 기원전 540년 어느 날에 태어났을 것이다). 기원전 489년 또는 기원전 488년경 레오니다스는 자신의 배다른 형제인 클레오메네스 1세의 뒤를 이어 스파르타의 왕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클레오메네스의 딸인 고르고와 결혼하였다. 그가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함으로 그의 이름은 유명해져 후세에까지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