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崔炯宇, 1935년 10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35년 경상남도 울주에서 태어나 부산공고를 거쳐,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8대 국회에서 야당인 신민당 소속으로 당선된데 이어 9대(1973년) 10대(1979년)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정치적으로 김영삼의 계보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김동영과 함께 대표적인 상도동 가신그룹으로 꼽히며 "좌동영 우형우"로 불렸다. 1980년 신군부 집권이후 국회가 해산되어 국회의원직을 잃고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이후 신군부의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하였지만, 1981년 김영삼이 설립한 민주산악회에서 일했고, 1985년 김영삼과 김대중이 연합하여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의 간사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였다. 1987년 6월항쟁이 벌어지고 민주화가 진척되어 정치규제에서 풀려나자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동래을에 출마 당선되어 통일민주당의 원내총무를 맡는다. 1990년 3당합당에서 민자당에 합류하여 이후 국회동자위 위원장, 1991년에는 정무장관을 맡았다. 이후 1992년의 14대 국회에서도 당선되어 1993년 새롭게 출범한 김영삼 정권하의 여당 사무총장을 맡았으나, 아들의 동국대 부정입학 의혹때문에 사퇴하엿다. 이후 내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최형우(崔炯宇, 1935년 10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35년 경상남도 울주에서 태어나 부산공고를 거쳐,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8대 국회에서 야당인 신민당 소속으로 당선된데 이어 9대(1973년) 10대(1979년)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정치적으로 김영삼의 계보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김동영과 함께 대표적인 상도동 가신그룹으로 꼽히며 "좌동영 우형우"로 불렸다. 1980년 신군부 집권이후 국회가 해산되어 국회의원직을 잃고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이후 신군부의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하였지만, 1981년 김영삼이 설립한 민주산악회에서 일했고, 1985년 김영삼과 김대중이 연합하여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의 간사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였다. 1987년 6월항쟁이 벌어지고 민주화가 진척되어 정치규제에서 풀려나자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동래을에 출마 당선되어 통일민주당의 원내총무를 맡는다. 1990년 3당합당에서 민자당에 합류하여 이후 국회동자위 위원장, 1991년에는 정무장관을 맡았다. 이후 1992년의 14대 국회에서도 당선되어 1993년 새롭게 출범한 김영삼 정권하의 여당 사무총장을 맡았으나, 아들의 동국대 부정입학 의혹때문에 사퇴하엿다. 이후 내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김영삼의 오랜 측근으로 활약하여 당시 민자당의 최대 계파인 민주계의 좌장이라고 불렸다. 1996년에도 민자당이 이름을 바꾼 신한국당소속으로 당선되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드려고 했으나 1997년 3월 갑작스럽게 뇌졸증으로 쓰러진 이후에는 사실상 정계를 은퇴하고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