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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려극성(昌黎棘城)은 선비족 모용부 그리고 전연의 근거지였다. 모용씨가 창려 극성을 근거로 하게 된 것은 진서에 보면 그 증조부 막호발이 조위에 협력하여 공손씨 토벌에 공을 세워 솔의왕이 되면서였다. 진은 요동을 나누어 설치하였다. 진군 8년 기양군을 이 곳에 속하게 하였다. 용성: 진군 8년 유성, 창려, 극성을 이 곳에 속하게 하였다. 요사, 유돈성, 낭수가 있다. 광흥: 도하, 영락, 연창을 이 곳에 속하게 하였다. 대략 180 호 정도라니 아주 띄어띄엄 살았나 봅니다. 군 치소는 용성(유성/화룡/활룡)이였고 진군 8 년에는 유성, 창려, 극성을 병합하여 소속.편입시켰다고 하며 요임금의 사당이 있고 狼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서에는 진나라에 의해 선비도독 으로 봉해진 모용외<廣에서 黃대신="黃대신" 鬼="鬼">)에 대해 "창려극성(昌黎棘城)의 선비인이고, 웅(熊)씨의 후손인 그의 선조는 대대로 북이(北夷)에 살았으며 동호(東胡.흉노)라고 했다"고 돼있다. 모용황은 모용씨의 기존 중심지인 극성, 창려 등 대릉하 유역을 차지하고 있고, 동생인 모용인은 그 동쪽의 요하유역을 점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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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창려극성(昌黎棘城)은 선비족 모용부 그리고 전연의 근거지였다. 모용씨가 창려 극성을 근거로 하게 된 것은 진서에 보면 그 증조부 막호발이 조위에 협력하여 공손씨 토벌에 공을 세워 솔의왕이 되면서였다. 진은 요동을 나누어 설치하였다. 진군 8년 기양군을 이 곳에 속하게 하였다. 용성: 진군 8년 유성, 창려, 극성을 이 곳에 속하게 하였다. 요사, 유돈성, 낭수가 있다. 광흥: 도하, 영락, 연창을 이 곳에 속하게 하였다. 대략 180 호 정도라니 아주 띄어띄엄 살았나 봅니다. 군 치소는 용성(유성/화룡/활룡)이였고 진군 8 년에는 유성, 창려, 극성을 병합하여 소속.편입시켰다고 하며 요임금의 사당이 있고 狼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서에는 진나라에 의해 선비도독 으로 봉해진 모용외<廣에서 黃대신="黃대신" 鬼="鬼">)에 대해 "창려극성(昌黎棘城)의 선비인이고, 웅(熊)씨의 후손인 그의 선조는 대대로 북이(北夷)에 살았으며 동호(東胡.흉노)라고 했다"고 돼있다. 고구려 장수여노가 지키고 있던 하성이 어디인지 불분명하지만 그를 사로잡아 창려 대극성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 대극성에서 아주 먼 곳은 아닐 것이다. 용성현은 진군8년(447년)유성, 창려, 극성과 함께 오랑캐에 뺏겼다(장수태왕에게 함락됨) 모용황은 모용씨의 기존 중심지인 극성, 창려 등 대릉하 유역을 차지하고 있고, 동생인 모용인은 그 동쪽의 요하유역을 점거하였다. 천평초(534년)에 다시 설치 창려군 -용성 : 유성, 창려, 극성을 포함하고, 요임금의 사당, 유돈성, 랑수가 있다 -광흥 : 보하, 영락, 연창이 있고, 계명산, 석성, 대유성이 있었다. 한기린의 관적은 창려 극성이었다. 한편 한상의 관적 창려 용성현은 극성·유성·창려성이 통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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