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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일창(千日瘡) 또는 천지일모(天地日母),아메노히보,아메히노호코는 신라와 일본에서 활동한 인물이였다. 유리왕(儒理王)의 맏아들로 이름은 천일창(天日昌)이다. 신라, 천일창(天日槍)이 왜땅으로 가고, 신라의 도공이 왜에 건너가서 신라식 도자기 제작하였다. 신라의 왕자 천일창이 해의 정기를 받은 처녀가 낳은 알을 빼앗아 가지고 있었는데, 천일창이 아내를 박대하자 아내는 일본으로 건너오고, 천일창도 따라 건너오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가야의 선견 왕자는 사반 대왕의 딸인 아카루히메와 가야에서 결혼하였는데 아카루히메가 도망하자 일본에 쫓아와서 천일창, 아메히노호코(天日槍)이라고 하였으며 일본에서 구주 이도국에 영지를 받아 이도국왕이 되었다. 서기 27년 천일창(天日槍)이 왜(일본)땅으로 가고, 신라의 도공이 왜에 건너가서 신라식 도자기 제작하였다. 신라에서는 왜 열도의 영토 확장의 호기로 보고 왕자 천일창을 원정군 대장으로 삼아 왜 열도 정벌에 나선다. 천일창은 북규수의 하카다(박다)에 상륙, 그 일대를 영지로 삼았다. 그동안 백제군의 탄압에 반감을 품고 있던 조선의 유민들이 신라의 천일창 밑으로 들어와 정벌군은 사기가 충천했다. 천일창은 여세를 몰아 돌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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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천일창(千日瘡) 또는 천지일모(天地日母),아메노히보,아메히노호코는 신라와 일본에서 활동한 인물이였다. 유리왕(儒理王)의 맏아들로 이름은 천일창(天日昌)이다. 신라, 천일창(天日槍)이 왜땅으로 가고, 신라의 도공이 왜에 건너가서 신라식 도자기 제작하였다. 신라의 왕자 천일창이 해의 정기를 받은 처녀가 낳은 알을 빼앗아 가지고 있었는데, 천일창이 아내를 박대하자 아내는 일본으로 건너오고, 천일창도 따라 건너오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가야의 선견 왕자는 사반 대왕의 딸인 아카루히메와 가야에서 결혼하였는데 아카루히메가 도망하자 일본에 쫓아와서 천일창, 아메히노호코(天日槍)이라고 하였으며 일본에서 구주 이도국에 영지를 받아 이도국왕이 되었다. 서기 27년 천일창(天日槍)이 왜(일본)땅으로 가고, 신라의 도공이 왜에 건너가서 신라식 도자기 제작하였다. 신라에서는 왜 열도의 영토 확장의 호기로 보고 왕자 천일창을 원정군 대장으로 삼아 왜 열도 정벌에 나선다. 천일창은 북규수의 하카다(박다)에 상륙, 그 일대를 영지로 삼았다. 그동안 백제군의 탄압에 반감을 품고 있던 조선의 유민들이 신라의 천일창 밑으로 들어와 정벌군은 사기가 충천했다. 천일창은 여세를 몰아 돌진하였다. 하리마풍토기에 따르면 천일창 왕자가 신라로부터 하리마 (현재의 兵庫縣 西部)땅으로 건너왔다는 기사도 있다. 그밖에 천일창 왕자의 여러 고장 정복설도 전해오고 있다. 즉 하리마(梁間)를 비롯 해서, 단바(丹波, 지금의 京都府와 兵庫縣)등이다. 수인왕(垂仁王)은 318~343년에 재위에 있었다. 수인왕은 서기 318년에 숭신왕의 아들로 왕위에 올랐다. 숭신 천황의 왕자가 뒷날의 제10대 ‘수인(스이닌) 천황이며, 수인 천황 당시 신라의 천일창 왕자가 신라로부터 일본 왕가 최초의 ‘삼신기(三神器)’와 ‘곰의 신리’(히모로기·신의 제단)를 신라로부터 가지고 도래하였다. 고대 일본 왕실에서는 신라신만을 숭상하며 제사지냈다고 밝혔다. 신라 천일창(天日槍) 왕자를 제신으로 모신 신사들도 전국 도처에 허다하며, 또한 신라인 진씨(秦氏)가문이 신라 농신(農神)에게 제사드리는 큰 규모의 신사들이 교토의 대표적인 신사들이다. 천일창은 단마국의 출도(出島) 사람 태이(太耳)의 딸 마다오(麻多烏)에게 장가들어서 단마제조(但馬諸助)를 낳았다. 단마제조는 단마일삼저(但馬日三杵)를 낳았고, 단마일삼저는 청언(淸彦)을 낳았고, 청언은 전도간수(田道間守)를 낳았다. 전도간수는 수인천황 90년(61, 탈해왕5) 봄에 칙서를 받들고 신라에 도착해서 귤나무를 가지고 돌아온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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