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申東曄, 1930년 8월 18일 ~ 1969년 4월 7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전쟁 때 조선인민군과 대한민국 국군(국민방위군)에 각각 징집되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체험한 후 첫 작품 〈나의나〉를 완성했다. 특히 국민방위군 시절 부패한 군간부와 공무원들이 군수품을 임의로 처분하는 바람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되는데, 그것때문에 강한 사회 비판의 현실참여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은 민물고기 때문에 간디스토마에 걸려 일생을 두고 고통을 겪었다. 이후 서울과 충남을 오가며 헌책방 경영, 교사, 잡지사 기자를 전전하다가 1961년 명성여고 교사로 안정된 직업을 얻게 되어 시작에 몰두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후 민주세력에 스며든 기회주의 세력을 비판하고 통일을 노래한 〈껍데기는가라〉를 필두로 여러 참여시를 발표하여 대표적인 참여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969년 간디스토마가 간암으로 악화되어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좌파 경제학자로 동국대학교 교수를 지낸 인정식이 장인이다.
신동엽(申東曄, 1930년 8월 18일 ~ 1969년 4월 7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전쟁 때 조선인민군과 대한민국 국군(국민방위군)에 각각 징집되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체험한 후 첫 작품 〈나의나〉를 완성했다. 특히 국민방위군 시절 부패한 군간부와 공무원들이 군수품을 임의로 처분하는 바람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되는데, 그것때문에 강한 사회 비판의 현실참여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은 민물고기 때문에 간디스토마에 걸려 일생을 두고 고통을 겪었다. 이후 서울과 충남을 오가며 헌책방 경영, 교사, 잡지사 기자를 전전하다가 1961년 명성여고 교사로 안정된 직업을 얻게 되어 시작에 몰두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후 민주세력에 스며든 기회주의 세력을 비판하고 통일을 노래한 〈껍데기는가라〉를 필두로 여러 참여시를 발표하여 대표적인 참여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969년 간디스토마가 간암으로 악화되어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좌파 경제학자로 동국대학교 교수를 지낸 인정식이 장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