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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읍(安邑)은 전국시대 위나라의 수도였다. 안읍은 위나라의 도성인데 가까이에 염지(鹽池)가 있었다. 한, 위, 조는 강대국인 진(晉)나라가 분열한 뒤 각기 독립해서 생긴 나라로서 모두 중원에 있었다. 한나라는 양정, 신정, 대량에, 조나라는 중산, 진양, 한단에, 위나라는 안읍, 낙양(뤄양), 목양에 도읍을 했었다. 왕응린의 <지리통석>에는 우나라는 하양(下陽), 조나라는 상당(上當), 위나라는 안읍(安邑), 연나라는 유관, 오나라는 서릉(西陵)이라 했다. 촉나라는 한락(漢樂)이라 했다. 진나라의 동정은 동쪽 여러 나라에 큰 위협이 되었다. 진나라는 진 효공은 상앙을 등용하여 국정(國政)을 개혁하였다. 상앙은 진나라의 2인자가 되었다. 상앙이 제2차 변법을 단행하였다. 진나라의 동진정책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최초의 공격 목표는 위나라 안읍(安邑)이었다. 196년, 유비는 헌제를 맞기 위해 안읍에 온 조홍의 군사를 물리쳤다. 후에 헌제를 따라 허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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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읍(安邑)은 전국시대 위나라의 수도였다. 안읍은 위나라의 도성인데 가까이에 염지(鹽池)가 있었다. 한, 위, 조는 강대국인 진(晉)나라가 분열한 뒤 각기 독립해서 생긴 나라로서 모두 중원에 있었다. 한나라는 양정, 신정, 대량에, 조나라는 중산, 진양, 한단에, 위나라는 안읍, 낙양(뤄양), 목양에 도읍을 했었다. 왕응린의 <지리통석>에는 우나라는 하양(下陽), 조나라는 상당(上當), 위나라는 안읍(安邑), 연나라는 유관, 오나라는 서릉(西陵)이라 했다. 촉나라는 한락(漢樂)이라 했다. 진나라의 동정은 동쪽 여러 나라에 큰 위협이 되었다. 진나라는 진 효공은 상앙을 등용하여 국정(國政)을 개혁하였다. 상앙은 진나라의 2인자가 되었다. 상앙이 제2차 변법을 단행하였다. 진나라의 동진정책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최초의 공격 목표는 위나라 안읍(安邑)이었다. 진 효공즉위 10년(bc 352)에는 위나라 안읍(安邑)을 공략하였다. 국력이 증강된 진나라는 위나라 안읍(安邑)을 공격하여 항복 받았다. 상앙은 직접 군대를 통솔하여 안읍을 점령한 후, 하서(河西)의 땅을 빼앗았다. 즉위 12년에는 수도를 함양에 성을 쌓고 그곳에 도읍(都邑)을 정하였다. 기원전 340년 위나라는 패전의 결과, 수도 안읍(安邑)에 불안을 느껴 대량(大梁)으로 천도하였다. 초한전 당시 한신은 곧바로 위나라의 도읍인 안읍(安邑)으로 찔러 들어갔다. 포판에다 대군을 벌여놓고 있던 위왕 표는 한나라 대군이 홀연 안 읍으로 몰려든다는 전갈을 받자 깜짝 놀랐다. 선박을 집결시켜 위나라 군대의 주력을 유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류인 하양(夏陽)에서 황하를 건너 위나라 수도인 안읍(安邑)을 기습했다. 갑자기 후방을 공격당한 위나라 군대는 혼비백산 했고 한신은 위나라 군대를 크게 승리하였다. 196년, 유비는 헌제를 맞기 위해 안읍에 온 조홍의 군사를 물리쳤다. 후에 헌제를 따라 허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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