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식렴(王式廉, ?~949년)은 후고구려의 귀족이자 고려의 왕족으로 고려 태조 왕건의 숙부 왕평달의 아들이며 왕건의 사촌동생이다. 왕식렴(王式廉)은 본관(本貫)이 개성(開城)이며 고려 초기의 공신이다. 개성왕씨(開城王氏). 아버지는 삼중대광(三重大匡) 평달(平達)이며, 태조의 종제이다. 고려의 정복전쟁에 참가하여 큰 전공을 거두었으며, 917년 태봉군을 이끌고 평양일대를 점령하여 궁예의 총애를 받았다. 왕식렴은 삼중 대광 왕평달(王平達)의 아들이며 태조의 종제(從第)이다. 위인이 충직 용감하고 근면 경근하였다. 처음 군부서사( 軍部書史 )로 있다 후에 많은 관직을 옮겨지냈다. 숨죽이며 세력을 키우던 왕식렴은 태조가 세상을 뜨고 혜종이즉위하자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가 찾아왔다고 여겼을 것이다. 혜종의 임종 직전에 왕식렴의 서경 군대가 개경으로 진입한 것도 납득할수 없는 일이다. 왕식렴 등은 다시 모여 왕요의 등극식 준비를 하고 왕규를 비롯한 그들 세력에 대한 대대적 살생부를 만들어 피의 숙청을 계획한다.
왕식렴(王式廉, ?~949년)은 후고구려의 귀족이자 고려의 왕족으로 고려 태조 왕건의 숙부 왕평달의 아들이며 왕건의 사촌동생이다. 왕식렴(王式廉)은 본관(本貫)이 개성(開城)이며 고려 초기의 공신이다. 개성왕씨(開城王氏). 아버지는 삼중대광(三重大匡) 평달(平達)이며, 태조의 종제이다. 고려의 정복전쟁에 참가하여 큰 전공을 거두었으며, 917년 태봉군을 이끌고 평양일대를 점령하여 궁예의 총애를 받았다. 왕식렴은 삼중 대광 왕평달(王平達)의 아들이며 태조의 종제(從第)이다. 위인이 충직 용감하고 근면 경근하였다. 처음 군부서사( 軍部書史 )로 있다 후에 많은 관직을 옮겨지냈다. 숨죽이며 세력을 키우던 왕식렴은 태조가 세상을 뜨고 혜종이즉위하자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가 찾아왔다고 여겼을 것이다. 혜종의 임종 직전에 왕식렴의 서경 군대가 개경으로 진입한 것도 납득할수 없는 일이다. 왕식렴 등은 다시 모여 왕요의 등극식 준비를 하고 왕규를 비롯한 그들 세력에 대한 대대적 살생부를 만들어 피의 숙청을 계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