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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월산[九月山]은 고조선(朝鮮) 단군(檀君)이 도읍한 곳이라. 삼성사(三聖祠)가 구월산(九月山) 성당리(聖堂里) 소증산(小甑山)에 있으며, 단인(檀因)·단웅(檀雄)·단군(檀君)의 사당이 있다. 구월산 삼성당은 고열가 단군이 지었다 노중평 진시황 8년에 단군 조선이 진에게 멸망했을 때, 단군 조선의 마지막 왕검인 고열가 단군은 구월산으로 은거했다.
- 구월산[九月山]은 고조선(朝鮮) 단군(檀君)이 도읍한 곳이라. 삼성사(三聖祠)가 구월산(九月山) 성당리(聖堂里) 소증산(小甑山)에 있으며, 단인(檀因)·단웅(檀雄)·단군(檀君)의 사당이 있다. 구월산 삼성당은 고열가 단군이 지었다 노중평 진시황 8년(BC 238)에 단군 조선이 진에게 멸망했을 때, 단군 조선의 마지막 왕검인 고열가 단군은 구월산으로 은거했다. 이때 조선은 산동의 번조선, 요서의 진조선, 한반도의 막조선 3조선이 있었는데, 멸망한 조선은 번조선과 진조선이었다. 진조선에 고열가 단군이 있었는데, 진에게 진조선이 멸망하면서 고열가 단군이 구월산에 은거한 것이었다. 이때 한반도인 막조선은 건재하였다. 그러므로 고열가단군이 가서 은거한 곳은 황해도 구월산이었다고 볼 수 있다. 번조선은 진이 한에게 멸망한 이후에, BC 108년에 한에게 멸망하였다. 이때 막조선의 중심지였던 중도 일대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도를 중심으로 한 춘천 일대에 1만 명 이상의 예맥족이 거주하였다. 예족은 번조선족이었고, 맥족은 진조선족이었다. 번조선과 진조선이 멸망하여 예족과 맥족이 한반도에 와서 합쳐짐으로 예맥족이라 하였다.(노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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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구월산[九月山]은 고조선(朝鮮) 단군(檀君)이 도읍한 곳이라. 삼성사(三聖祠)가 구월산(九月山) 성당리(聖堂里) 소증산(小甑山)에 있으며, 단인(檀因)·단웅(檀雄)·단군(檀君)의 사당이 있다. 구월산 삼성당은 고열가 단군이 지었다 노중평 진시황 8년에 단군 조선이 진에게 멸망했을 때, 단군 조선의 마지막 왕검인 고열가 단군은 구월산으로 은거했다.
- 구월산[九月山]은 고조선(朝鮮) 단군(檀君)이 도읍한 곳이라. 삼성사(三聖祠)가 구월산(九月山) 성당리(聖堂里) 소증산(小甑山)에 있으며, 단인(檀因)·단웅(檀雄)·단군(檀君)의 사당이 있다. 구월산 삼성당은 고열가 단군이 지었다 노중평 진시황 8년(BC 238)에 단군 조선이 진에게 멸망했을 때, 단군 조선의 마지막 왕검인 고열가 단군은 구월산으로 은거했다. 이때 조선은 산동의 번조선, 요서의 진조선, 한반도의 막조선 3조선이 있었는데, 멸망한 조선은 번조선과 진조선이었다. 진조선에 고열가 단군이 있었는데, 진에게 진조선이 멸망하면서 고열가 단군이 구월산에 은거한 것이었다. 이때 한반도인 막조선은 건재하였다. 그러므로 고열가단군이 가서 은거한 곳은 황해도 구월산이었다고 볼 수 있다. 번조선은 진이 한에게 멸망한 이후에, BC 108년에 한에게 멸망하였다. 이때 막조선의 중심지였던 중도 일대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도를 중심으로 한 춘천 일대에 1만 명 이상의 예맥족이 거주하였다. 예족은 번조선족이었고, 맥족은 진조선족이었다. 번조선과 진조선이 멸망하여 예족과 맥족이 한반도에 와서 합쳐짐으로 예맥족이라 하였다.(노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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