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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문공(鄭文公, ?-기원전 628)은 춘추시대 정나라의 국군(國君). 이름은 첩(捷)이고, 여공(厲公)의 아들이다. 정나라에 들렀었던 중이는 대우가 무례했으므로 귀국하여 군주가 되자 정나라를 쳤다. 기원전 627년, 진나라는 진(晋)나라 문공(文公)과 연합하여 정(鄭)나라를 공격하였다가, 정나라 문공(文公)이 보낸 대부(大夫) 촉지무의 설득으로 대부 기자(杞子)를 비롯한 일부 인원만을 남겨 두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본디 정나라 문공에게는 3명의 정부인과 5명의 적자가 있었다. 그러나 5명의 적자는 모두 죄를 짓고 젊어서 죽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정나라 보호 임무를 띄고 정나라에 남아있던 진(秦)나라 대부 기자(杞子)는 진나라 목공에게 밀서를 보내 정나라의 상황을 보고하였다. "정나라는 우리나라에 대하여 방비를 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 저희들이 이미 북쪽 성문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왕께서 지금 비밀리에 군대를 보내오신다면, 정나라는 곧 저희 것이 될 것입니다." 진(秦) 목공은 기자의 비밀 보고를 받고 매우 기뻐하며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로 향했다. 분류:정나라의 군주 분류:진문공 분류:문공 분류: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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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정문공(鄭文公, ?-기원전 628)은 춘추시대 정나라의 국군(國君). 이름은 첩(捷)이고, 여공(厲公)의 아들이다. 정나라에 들렀었던 중이는 대우가 무례했으므로 귀국하여 군주가 되자 정나라를 쳤다. 기원전 627년, 진나라는 진(晋)나라 문공(文公)과 연합하여 정(鄭)나라를 공격하였다가, 정나라 문공(文公)이 보낸 대부(大夫) 촉지무의 설득으로 대부 기자(杞子)를 비롯한 일부 인원만을 남겨 두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본디 정나라 문공에게는 3명의 정부인과 5명의 적자가 있었다. 그러나 5명의 적자는 모두 죄를 짓고 젊어서 죽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정나라 보호 임무를 띄고 정나라에 남아있던 진(秦)나라 대부 기자(杞子)는 진나라 목공에게 밀서를 보내 정나라의 상황을 보고하였다. "정나라는 우리나라에 대하여 방비를 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 저희들이 이미 북쪽 성문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왕께서 지금 비밀리에 군대를 보내오신다면, 정나라는 곧 저희 것이 될 것입니다." 진(秦) 목공은 기자의 비밀 보고를 받고 매우 기뻐하며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로 향했다. 진나라 군대는 장거리 행군을 거치며 정나라 주변에 이르렀다. 그런데 때마침 고현(高弦)이라는 정나라 상인이 이 곳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완전 무장을 한 진나라 군대를 보고 그들의 속셈을 곧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집이 침범을 당하게 될까 걱정이 되었지만, 혼자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는 한참동안 궁리하다가 마침내 방법을 생각해 냈다. 고현은 서둘러 아래 사람을 보내 정나라 군주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는 한편, 정나라 사신으로 변장하고 소떼를 몰아 진나라 진영으로 향했다. 진나라 군주와 장군들은 정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온 것을 보고 정나라가 이미 모든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섣불리 정나라 쪽으로 진군할 수 없었다. 정나라 군주는 진나라 군대가 도읍을 공격하러 왔다는 보고를 받고,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정목공은 대부 황무자를 시켜 진나라의 대부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를 살펴보게 하였는데, 그들은 수레에 실을 짐을 묶어놓고, 무기를 손질하고 말에 꼴을 먹이고 있었다. 정나라 목공은 방어를 준비하는 한편 진나라 대부 기자를 불러 완곡하게 죽이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기자 등 진나라 사람들은 계획이 탄로 난 것을 알고 허둥지둥 도망하였다. 진나라 군대도 정나라를 공격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진나라 군대는 귀환하던 도중 진(晉)나라 군대의 기습 공격을 받고 전군이 궤멸 당하였다 분류:정나라의 군주 분류:진문공 분류:문공 분류: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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