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사시왕은 대소가 죽은 후 대소의 동생인 갈사왕은 갈사국를 세웠다. 전남편 주몽을 축출하고 금와 황제와 재혼하여 부여를 통일한 졸본 공주는 금와 황제와의 사이에서 요망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고 이 아이가 부여가 망하기 직전인 서기 21년 갈사국을 세워웠다. 이 때 쯤 남아있던 부여는 동부여후국인 서부여, 갈사국과 졸본 부여 세가지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소왕의 동생중 한사람(막내)이 동부여의 유민을 이끌고 북쪽으로 떠돌던 중, 사냥 나온 해두왕을 죽이고 나라를 세워 갈사국 왕이 된다. 서기 68년 죽은 왕의 아우가 추종자 수백 명과 더불어 압록곡(鴨綠谷)에 이르렀는데 마침 해두국(海頭國) 왕이 나와 사냥하는 것을 보고, 그를 죽이고, 그의 백성을 취한 뒤 갈사수(曷思水)로 달아나 갈사 부여를 세운다. 그의 이름이 영포라는 건 어디에도 없다. 영포가 해두국 왕을 죽이고 그 곳에 백성들을 모아 갈사국을 세운다. 그가 죽은 뒤에 갈사에 묻혔다. 이 갈사 부여는 북갈사라고도 부르는데 서기 22년에서부터 68년까지 지속이 된다. 갈사국은 바닷가에 있는 국가로, 한때 해두국(海頭)이라 불렸다.
갈사시왕은 대소가 죽은 후 대소의 동생인 갈사왕은 갈사국를 세웠다. 전남편 주몽을 축출하고 금와 황제와 재혼하여 부여를 통일한 졸본 공주는 금와 황제와의 사이에서 요망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고 이 아이가 부여가 망하기 직전인 서기 21년 갈사국을 세워웠다. 이 때 쯤 남아있던 부여는 동부여후국인 서부여, 갈사국과 졸본 부여 세가지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소왕의 동생중 한사람(막내)이 동부여의 유민을 이끌고 북쪽으로 떠돌던 중, 사냥 나온 해두왕을 죽이고 나라를 세워 갈사국 왕이 된다. 서기 68년 죽은 왕의 아우가 추종자 수백 명과 더불어 압록곡(鴨綠谷)에 이르렀는데 마침 해두국(海頭國) 왕이 나와 사냥하는 것을 보고, 그를 죽이고, 그의 백성을 취한 뒤 갈사수(曷思水)로 달아나 갈사 부여를 세운다. 그의 이름이 영포라는 건 어디에도 없다. 영포가 해두국 왕을 죽이고 그 곳에 백성들을 모아 갈사국을 세운다. 그가 죽은 뒤에 갈사에 묻혔다. 이 갈사 부여는 북갈사라고도 부르는데 서기 22년에서부터 68년까지 지속이 된다. 갈사국은 바닷가에 있는 국가로, 한때 해두국(海頭)이라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