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읍성은 조선 중기의 읍성으로,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한다. 축성연대는 확실치 않으며, 단종 원년(1453) 또는 숙종(재위 1674~1720) 때로 짐작한다.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는데, 나주진관,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꼽는다. 읍성에는 20여 동의 관아가 있었으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 동헌과 객사 등 10여 채가 복원되었다. 둘레 1.68km, 높이 4m. 읍성이면서도 읍을 둘러싸지 않고 산성처럼 되어 있다. 자연석을 잘 맞추어 쌓아 성벽모양이 아름다우며, 원형이 잘 보조되어 있다. 읍성에서 보기 힘든 주초와 누문을 갖고 있어 성곽연구에도 중요한 곳이다. “고창읍성의 성밟기 풍습” 매년 봄마다 고창읍성에서는 성밟기 행사가 벌어진다.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며 성곽 위를 돌면 무병장수하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고 한다. 이 풍습은 여자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날라서 성을 쌓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고창 읍성은 조선 중기의 읍성으로,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한다. 축성연대는 확실치 않으며, 단종 원년(1453) 또는 숙종(재위 1674~1720) 때로 짐작한다.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는데, 나주진관,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꼽는다. 읍성에는 20여 동의 관아가 있었으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 동헌과 객사 등 10여 채가 복원되었다. 둘레 1.68km, 높이 4m. 읍성이면서도 읍을 둘러싸지 않고 산성처럼 되어 있다. 자연석을 잘 맞추어 쌓아 성벽모양이 아름다우며, 원형이 잘 보조되어 있다. 읍성에서 보기 힘든 주초와 누문을 갖고 있어 성곽연구에도 중요한 곳이다. “고창읍성의 성밟기 풍습” 매년 봄마다 고창읍성에서는 성밟기 행사가 벌어진다.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며 성곽 위를 돌면 무병장수하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고 한다. 이 풍습은 여자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날라서 성을 쌓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