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성지(聖地) 메카는 아라비아 반도 중부, 홍해 연안에서 약 80 km 지점의 불모지 골짜기에 위치하는 도시로, 인도양에서 지중해안에 이르는 대상로(隊商路)의 요지였다. 옛날부터 흩어진 유대인들이 살았으며 에베소 공의회와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린 경교등의 그리스도교내 일부 마이너리티교회들이 로마교회의 탄압을 피해 거주하였다. 메카는 카바 신전을 중심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종교적 중심지였기에 매년 많은 대상과 순례자들이 찾아들었다. 메카의 지배 계급은 5세기 말경, 부근 황야에서 온 쿠라이시 부족이었으며 무함마드는 그 중의 하심 씨족 출신이다. 하심 씨족에는 아브드 알 무탈리브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열 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의 이름이 아브드 알라였다. 아브드 알라는 아미나와 결혼을 했는데 그 사이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난다. 무함마드가 대상을 떠난 후 죽었고 무함마드는 유복자로 태어나나, 어머니 아미나도 메디나를 방문하고 오는 중 병에 걸려 죽게 된다. 무함마드는 하녀의 손을 잡고 메카로 돌아와 할아버지 아브드 알 무탈리브에 의해 자라다가 할아버지가 죽자 삼촌 아브 탈리브에 의해 키워지게 된다. 삼촌 아브 탈리브는 가난했는데다 딸린 식구들이 많아 무함마드는 어린 나이부터 삼촌 아브 탈리브의 무역 활동을 따라다니게 된다.
이슬람의 성지(聖地) 메카는 아라비아 반도 중부, 홍해 연안에서 약 80 km 지점의 불모지 골짜기에 위치하는 도시로, 인도양에서 지중해안에 이르는 대상로(隊商路)의 요지였다. 옛날부터 흩어진 유대인들이 살았으며 에베소 공의회와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린 경교등의 그리스도교내 일부 마이너리티교회들이 로마교회의 탄압을 피해 거주하였다. 메카는 카바 신전을 중심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종교적 중심지였기에 매년 많은 대상과 순례자들이 찾아들었다. 메카의 지배 계급은 5세기 말경, 부근 황야에서 온 쿠라이시 부족이었으며 무함마드는 그 중의 하심 씨족 출신이다. 하심 씨족에는 아브드 알 무탈리브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열 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의 이름이 아브드 알라였다. 아브드 알라는 아미나와 결혼을 했는데 그 사이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난다. 무함마드가 대상을 떠난 후 죽었고 무함마드는 유복자로 태어나나, 어머니 아미나도 메디나를 방문하고 오는 중 병에 걸려 죽게 된다. 무함마드는 하녀의 손을 잡고 메카로 돌아와 할아버지 아브드 알 무탈리브에 의해 자라다가 할아버지가 죽자 삼촌 아브 탈리브에 의해 키워지게 된다. 삼촌 아브 탈리브는 가난했는데다 딸린 식구들이 많아 무함마드는 어린 나이부터 삼촌 아브 탈리브의 무역 활동을 따라다니게 된다. 12세에 무함마드는 삼촌을 따라 시리아로 갔다. 그곳에서 바히라라는 이름의 경교 수도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대상에 무함마드에게 선지자의 징표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 후 무함마드는 목동일을 하며 자라나게 된다. 당시 아라비아 각지에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신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사바인들도 아라비아에 거주하였는데 이들은 서로 종교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다. 신성한 달이라 불리던 9월에 금식을 행하던 것은 사바인의 종교적 영향이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 이단들의 영향으로 유일신 사상이 아라비아 반도에 전해지긴 했으나 대부분은 여전히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카바 신전에는 360개의 우상들이 존재했는데 그중 가장 강한 신을 알라라고 불렀다. 이 알라라는 호칭은 후에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목동이었던 무함마드는 가난했던 삼촌 아부 탈리브를 생각하여 수익성이 좋은 직업을 구했고 삼촌 아부 탈리브의 소개로 부자였던 과부 하디자의 고용인으로 들어가 그녀를 대신해 시리아 지방으로 대상 무역을 떠나게 된다. 무함마드의 이 무역은 큰 성공을 거두고 샴 지방의 특산품을 구해 메카로 돌아왔다. 하디자는 무함마드에게 깊은 감명을 받고 15살이나 어린 무함마드에게 청혼을 하였다. 무함마드 25세 하디자 40세에 둘은 결혼을 하였다. 부자였던 하디자와의 결혼은 무함마드에게 부와 명예를 주었고 무함마드는 삼촌의 재정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알리를 입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