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시와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에게는 우선적으로 성균관 입학 기회가 주어졌고, 그 외에 선발시험인 승보(升補)나 음서를 통해 입학할 수 있었다. 정원은 200명이었다. 1910년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 이후 그 기능이 상실되었고 명칭 또한 경학원으로 바뀌어 경전을 가르치는 사설 전문학원으로 전락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원래의 성균관이 가지고 있던 최고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근대적 형태의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교로 이관되었다. 현재의 성균관은 유교 및 전통문화 전문교육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2]
진사시와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에게는 우선적으로 성균관 입학 기회가 주어졌고, 그 외에 선발시험인 승보(升補)나 음서를 통해 입학할 수 있었다. 정원은 200명이었다. 1910년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 이후 그 기능이 상실되었고 명칭 또한 경학원으로 바뀌어 경전을 가르치는 사설 전문학원으로 전락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원래의 성균관이 가지고 있던 최고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근대적 형태의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교로 이관되었다. 현재의 성균관은 유교 및 전통문화 전문교육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