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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정 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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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정성(大靜城)은 조선 시대의 제주의 산성이다. 제주 남제주군 대정읍 안성리, 보성리, 인성리 일대의 둘레 1,165m 규모의 제주기념물 제12호이다. 조선시대에 대정현의 치소를 둘러 쌓았던 성터. 1418년(태종 18)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대정현감 유신(兪信)에 의해 처음 축조되었다. 당시는 성의 둘레가 약 1,450m, 높이 약 6m이고, 동·서·남에 각각 문이 있었는데 문 위에는 망루가 있었다. 그러나 중종 때에는 성 안에 우물이 없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식수의 어려움과 화재에 대한 예방 대책이 없다 하여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것을 조정에 건의한 적이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후인 1599년(선조 32)에는 성문을 방어하는 옹성과 포대를 더 쌓기도 하였다. 남문은 당초 해안루라 편액하였는데 1770년(영조 46) 현감 이관이 이를 중건하였으며, 동문은 1795년(정조 19)에 현감 고한록이 중수하였고, 1827년(순조 27)에는 현감 박상률이 동·서문을 각각 중수하였다. 이후 1855년(철종 6)에는 역시 대정현감 신성흠이 북성 위에 망미정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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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정성(大靜城)은 조선 시대의 제주의 산성이다. 제주 남제주군 대정읍 안성리, 보성리, 인성리 일대의 둘레 1,165m 규모의 제주기념물 제12호이다. 조선시대에 대정현의 치소를 둘러 쌓았던 성터. 1418년(태종 18)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대정현감 유신(兪信)에 의해 처음 축조되었다. 당시는 성의 둘레가 약 1,450m, 높이 약 6m이고, 동·서·남에 각각 문이 있었는데 문 위에는 망루가 있었다. 그러나 중종 때에는 성 안에 우물이 없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식수의 어려움과 화재에 대한 예방 대책이 없다 하여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것을 조정에 건의한 적이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후인 1599년(선조 32)에는 성문을 방어하는 옹성과 포대를 더 쌓기도 하였다. 남문은 당초 해안루라 편액하였는데 1770년(영조 46) 현감 이관이 이를 중건하였으며, 동문은 1795년(정조 19)에 현감 고한록이 중수하였고, 1827년(순조 27)에는 현감 박상률이 동·서문을 각각 중수하였다. 이후 1855년(철종 6)에는 역시 대정현감 신성흠이 북성 위에 망미정을 세웠다. 성은 현재 대부분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 중 북쪽의 성체는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는데, 성벽의 너비는 2.75~3.85m, 높이는 2.75~3.095m이다. 당시의 관청 건물로는 성 안에 객사동헌·어변청·아사·향사당·영안관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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