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朴勞解,본명 박기평 朴基平 1958년 11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시인, 노동운동가이다. 전라남도 함평 태생으로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하고 섬유, 화학, 운수등의 각종 노동현장을 전전하였다. "노동해방"을 뜻하는 "노해"라는 필명을 통해 1983년 동인지 "시와 경제"를 통해 등단하고, 1984년 첫시집 노동의 새벽을 발표하였다. 이후 1988년 제1회 노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작품활동뿐만 아니라 1987년 6월항쟁 이후 각종 시국평론을 발표하고 혁명적 노동자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필명으로만 활동을 하여 집단창작을 하는 그룹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1991년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약칭 사노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그 실체를 드러내었다.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1998년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8.15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일선 재야운동에는 거리를 유지한채 각종 언론기고와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박노해(朴勞解,본명 박기평 朴基平 1958년 11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시인, 노동운동가이다. 전라남도 함평 태생으로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하고 섬유, 화학, 운수등의 각종 노동현장을 전전하였다. "노동해방"을 뜻하는 "노해"라는 필명을 통해 1983년 동인지 "시와 경제"를 통해 등단하고, 1984년 첫시집 노동의 새벽을 발표하였다. 이후 1988년 제1회 노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작품활동뿐만 아니라 1987년 6월항쟁 이후 각종 시국평론을 발표하고 혁명적 노동자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필명으로만 활동을 하여 집단창작을 하는 그룹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1991년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약칭 사노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그 실체를 드러내었다.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1998년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8.15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일선 재야운동에는 거리를 유지한채 각종 언론기고와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