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니아누스 2세 [Valentinianus II,(영) Valentinian Ⅱ. 정식 이름은 Flavius Valentinianus. 371 벨기카 트레베리~ 392. 5. 15 루그두넨시스 빈]는 로마의 황제(375~392 재위)이다.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1세와 그의 2번째 아내 유스티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375년 발렌티니아누스가 죽자 제국의 서방은 발렌티니아누스의 두 아들, 그라티아누스와 발렌티니아누스 2세에게로 분할되어 상속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지 5일 뒤에 4세의 나이로 아퀸쿰(지금의 부다페스트)에서 황제로 선포되었다(375. 11. 22). 이 선포는 당시 실제로 통치하고 있던 두 황제 발렌스와 그라티아누스에게 알리거나 동의를 받아낸 것이 아니었으나 두 황제는 뒤에 결국 발렌티니아누스를 승인해 어머니의 후견하에 이탈리아·아프리카·일리리쿰을 다스리도록 했다. 막시무스는 자신과 공동 황제였던 발렌티니아누스 2세와도 협상을 벌여 불완전하나마 평화조약을 맺었다. 바오로 대성당은 산 피에트로 대성당(베드로 대성전)을 모델로 한 이 성전은 발렌티니아누스 2세 황제에 의해 386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그의 후계자인 호노리우스 황제가 395년에 완성하였다.
발렌티니아누스 2세 [Valentinianus II,(영) Valentinian Ⅱ. 정식 이름은 Flavius Valentinianus. 371 벨기카 트레베리~ 392. 5. 15 루그두넨시스 빈]는 로마의 황제(375~392 재위)이다.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1세와 그의 2번째 아내 유스티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375년 발렌티니아누스가 죽자 제국의 서방은 발렌티니아누스의 두 아들, 그라티아누스와 발렌티니아누스 2세에게로 분할되어 상속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지 5일 뒤에 4세의 나이로 아퀸쿰(지금의 부다페스트)에서 황제로 선포되었다(375. 11. 22). 이 선포는 당시 실제로 통치하고 있던 두 황제 발렌스와 그라티아누스에게 알리거나 동의를 받아낸 것이 아니었으나 두 황제는 뒤에 결국 발렌티니아누스를 승인해 어머니의 후견하에 이탈리아·아프리카·일리리쿰을 다스리도록 했다. 막시무스는 자신과 공동 황제였던 발렌티니아누스 2세와도 협상을 벌여 불완전하나마 평화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383년 제위를 찬탈하고 그라티아누스를 죽인 뒤 387년 이탈리아를 침략하자 발렌티니아누스와 그의 어머니는 동부지역의 새로운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다스리는 그리스의 테살로니카로 도망갔다. 388년 테오도시우스에 의해 막시무스가 전복되자 발렌티니아누스는 복위했으나 392년 빈의 궁정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이는 발렌티니아누스가 해임시키려 한 갈리아 지방 섭정 아르보가스트의 하수인들에 의한 것인 듯하다. 바오로 대성당은 산 피에트로 대성당(베드로 대성전)을 모델로 한 이 성전은 발렌티니아누스 2세 황제에 의해 386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그의 후계자인 호노리우스 황제가 395년에 완성하였다. 분류:로마의 황제 분류:플라비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