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箕準)은 기자 조선의 46세 왕이였다. 그는 기자조선-번조선의 마지막 단군이였다. 기비의 아들 기준이 즉위했는데 위만은 연나라 신하로 상투를 하고 번조선(당시 기자조선)으로 망명을 해 왔다. 번조선의 단군 기준은 위만에게 변방을 지키는 군대 지휘관으로 삼았다. 정미년(기원전 146)에 떠돌이 도적인 위만의 꼬임에 빠져 패하고 마침내 바다로 들어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기준이 위만에게 왕을 빼앗기자, 그 무리를 이끌고, 배를 타고, 황해도 마한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니, 이를 기씨 마한이라 하고, 또한 금마(金馬)라 하였다. 후한서에는 기자 조선의 기준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한지(韓地)로 이동하여 마한을 공격하여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었다고 적혀있다.
기준(箕準)은 기자 조선의 46세 왕이였다. 그는 기자조선-번조선의 마지막 단군이였다. 기비의 아들 기준이 즉위했는데 위만은 연나라 신하로 상투를 하고 번조선(당시 기자조선)으로 망명을 해 왔다. 번조선의 단군 기준은 위만에게 변방을 지키는 군대 지휘관으로 삼았다. 정미년(기원전 146)에 떠돌이 도적인 위만의 꼬임에 빠져 패하고 마침내 바다로 들어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기준이 위만에게 왕을 빼앗기자, 그 무리를 이끌고, 배를 타고, 황해도 마한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니, 이를 기씨 마한이라 하고, 또한 금마(金馬)라 하였다. 후한서에는 기자 조선의 기준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한지(韓地)로 이동하여 마한을 공격하여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었다고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