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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이산은 원나라의 제3대 황제(재위:1307년~1311년)였다. 원 무종(元武宗)의 시호는 인혜선효황제(仁惠宣孝皇帝) 휘는 패아지근해산(孛兒只斤海山)이었다. 그는 쿠빌라이의 황손 친김 태자의 아들 다르마발라와 다기의 아들이었다. 1307년 테무르가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죽자, 몽골 제국에서 되풀이 되던 후계자 쟁탈전이 다시 재연되어 황제의 자리를 둘러싸고 모후, 외척, 권신등 몽골 귀족끼리의 격렬한 권력다툼이 되풀이 되었다. 또 권력다툼의 중심이 된 이들은 칭기즈칸의 황후 보르테, 쿠빌라이의 황후 차브이, 테무르의 모친 코코진 등의 출신부족에서 쿠빌라이, 테무르의 2대에 걸쳐 외척으로 권세를 누렸던 곤기라트부를 중심으로 결속된 원나라의 궁정귀족들이었다. 테무르의 황후 브르간은 곤기라트부의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귀족의 힘을 억누르기 위해 테무르의 종제였던 안서왕 아난다를 황제로 맞이했으나, 방계 즉위에 의해 기득권을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한 중신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브르간과 아난다를 살해하고, 몽골고원의 방위를 담당하던 테무르의 조카 카이산을 황제로 맞이했다. 그는 킵차크 한국, 아수드, 캉그리 인사를 영입하였고 곤기라트 족에 대해서는 논공행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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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이산은 원나라의 제3대 황제(재위:1307년~1311년)였다. 원 무종(元武宗)의 시호는 인혜선효황제(仁惠宣孝皇帝) 휘는 패아지근해산(孛兒只斤海山)이었다. 그는 쿠빌라이의 황손 친김 태자의 아들 다르마발라와 다기의 아들이었다. 1307년 테무르가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죽자, 몽골 제국에서 되풀이 되던 후계자 쟁탈전이 다시 재연되어 황제의 자리를 둘러싸고 모후, 외척, 권신등 몽골 귀족끼리의 격렬한 권력다툼이 되풀이 되었다. 또 권력다툼의 중심이 된 이들은 칭기즈칸의 황후 보르테, 쿠빌라이의 황후 차브이, 테무르의 모친 코코진 등의 출신부족에서 쿠빌라이, 테무르의 2대에 걸쳐 외척으로 권세를 누렸던 곤기라트부를 중심으로 결속된 원나라의 궁정귀족들이었다. 테무르의 황후 브르간은 곤기라트부의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귀족의 힘을 억누르기 위해 테무르의 종제였던 안서왕 아난다를 황제로 맞이했으나, 방계 즉위에 의해 기득권을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한 중신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브르간과 아난다를 살해하고, 몽골고원의 방위를 담당하던 테무르의 조카 카이산을 황제로 맞이했다. 그는 킵차크 한국, 아수드, 캉그리 인사를 영입하였고 곤기라트 족에 대해서는 논공행상이 없었다. 두아가 1307년에 죽고 차가타이 한국이 칸위를 둘러싼 내분에 휩싸이자 카이두의 네 아들 차파르, 오르스, 얀기차르, 투그메는 힘을 모아 1310년에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이 이끄는 반란군은 알말리크 근처에서 콘첵 칸이 이끄는 차가타이 칸국의 군대와 결전을 벌였으나 대패하였고 이 패배 이후 차파르는 원나라의 무종에게로 망명했다. 차파르가 원나라로 망명하면서 우구데이계 세력은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카이산의 사후는 동생 아유르바르와다가 제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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