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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흘 또는 아홀(阿忽)은 단군조선[檀君朝鮮] 23세 단군으로 재위 76년이였다. 계미 48년 단제 붕어하시니 태자 아흘이 즉위하였다. 23세 단군 아흘 재위 76년 갑신 원년(BC 1237) 단제의 숙부인 고불가에게 명하여 낙랑골을 통치하도록 하였다. 웅갈손을 보내 남국의 왕과 함께 남쪽을 정벌한 군대가 은나라 땅에 여섯읍을 설치하였다. 을유 2년(B.C.1236), 남국의 임금 금달이 청구의 임금, 구려의 임금과 주개에서 회합하여 몽고리의 병력을 합쳐 가는 곳마다 은나라의 서책을 부수고 깊숙히 오지로 들러가 회대의 땅을 평정하였다 단군세기에서 23세 단군 아흘 때에 주개(周愷)에서 여러 제후들이 회합했는데 혹시 주개구일 수도 있다. 변방 장수 신독의 침략으로 녹산 아사달이 함락되니 색불루 단군이 영고탑으로 피했다. 이후 기원전 1237년 아흘 단군 원년에 비로소 신독을 주살하고, 녹산 아사달을 수복하여 76년을 녹산 아사달에서 다스렸다. 기원전 1237년 제23세 아흘 단군, 그리고 기원전 195년에는 낙랑왕 최승이 보물을 싣고 마한의 서울 왕검성으로 가는 장면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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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흘 또는 아홀(阿忽)은 단군조선[檀君朝鮮] 23세 단군으로 재위 76년이였다. 계미 48년 단제 붕어하시니 태자 아흘이 즉위하였다. 23세 단군 아흘 재위 76년 갑신 원년(BC 1237) 단제의 숙부인 고불가에게 명하여 낙랑골을 통치하도록 하였다. 웅갈손을 보내 남국의 왕과 함께 남쪽을 정벌한 군대가 은나라 땅에 여섯읍을 설치하였다. 을유 2년(B.C.1236), 남국의 임금 금달이 청구의 임금, 구려의 임금과 주개에서 회합하여 몽고리의 병력을 합쳐 가는 곳마다 은나라의 서책을 부수고 깊숙히 오지로 들러가 회대의 땅을 평정하였다 단군세기에서 23세 단군 아흘 때에 주개(周愷)에서 여러 제후들이 회합했는데 혹시 주개구일 수도 있다. 변방 장수 신독의 침략으로 녹산 아사달이 함락되니 색불루 단군이 영고탑으로 피했다. 이후 기원전 1237년 아흘 단군 원년에 비로소 신독을 주살하고, 녹산 아사달을 수복하여 76년을 녹산 아사달에서 다스렸다. 기원전 1237년 제23세 아흘 단군, 그리고 기원전 195년에는 낙랑왕 최승이 보물을 싣고 마한의 서울 왕검성으로 가는 장면이 적혀 있다. 4년에 은나라 사절이 왔다. 5년에 중신 회의를 열고 영고탑(寧古塔)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토의하였다. 아홀 75년, 훌륭한 재상인 아덕(亞德)이 왕을 잘 보좌하니, 나라가 태평해졌다. 기해 76년(기원전 1162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연나(延那)가 즉위하였다. 조선 시대, 3품 이상의 관리는 자색의 관복에다 아홀을 주고 금어대를 찼으며, 4품과 5품은 짙은 붉은색 관복에다 역시 아홀과 금어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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