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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한(水韓, 6858 - 기원전 340년)은 68대 변한이였다. 번조선 왕 해인 또는 산한(山韓)은 연나라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기원전 340년에 번한에는 수한(水韓)이 즉위하였다. 이듬해 연나라의 배도(倍道)가 안촌홀(安村忽,안덕향 추정)을 공략하였다. 번한 68대 수한(水韓) 2년(기원전 339) 연(燕)나라가 국경을 넘어 쳐들어 오니, 후가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연나라를 쳐부셨다. 연은 번조선이 혼란기라 여기고 군위를 찬탈한 기후를 치자는 명분으로 마한을 찾아온 것 같다. 그러나 막조선에서는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 또 험독(險瀆)에서도 노략질하니 수유(須臾)의 사람 기후가 자식과 자제들 5000인을 데리고 와 싸움을 도왔다. 이에 군세가 떨치기 시작하더니 곧 계성의 남쪽에서도 싸우려하니, 연나라가 두려워하며 사신을 보내 사과하니 대신과 자제를 인질로 삼았다. 임오(壬午, 기원전 339년)년 연나라가 싸움에 져 공자(公子) 진개를 인질로 두었다. 고조선 3한 말기의 조선 3한 중의 변한왕 수한(水韓)이 기원전 340년 제 39세 변한 왕위에 즉위하여 17년 간 재위하고 무술(기원전 323년)년에 수한이 죽었는데 후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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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한(水韓, 6858 - 기원전 340년)은 68대 변한이였다. 번조선 왕 해인 또는 산한(山韓)은 연나라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기원전 340년에 번한에는 수한(水韓)이 즉위하였다. 이듬해 연나라의 배도(倍道)가 안촌홀(安村忽,안덕향 추정)을 공략하였다. 번한 68대 수한(水韓) 2년(기원전 339) 연(燕)나라가 국경을 넘어 쳐들어 오니, 후가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연나라를 쳐부셨다. 연은 번조선이 혼란기라 여기고 군위를 찬탈한 기후를 치자는 명분으로 마한을 찾아온 것 같다. 그러나 막조선에서는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 또 험독(險瀆)에서도 노략질하니 수유(須臾)의 사람 기후가 자식과 자제들 5000인을 데리고 와 싸움을 도왔다. 이에 군세가 떨치기 시작하더니 곧 계성의 남쪽에서도 싸우려하니, 연나라가 두려워하며 사신을 보내 사과하니 대신과 자제를 인질로 삼았다. 임오(壬午, 기원전 339년)년 연나라가 싸움에 져 공자(公子) 진개를 인질로 두었다. 고조선 3한 말기의 조선 3한 중의 변한왕 수한(水韓)이 기원전 340년 제 39세 변한 왕위에 즉위하여 17년 간 재위하고 무술(기원전 323년)년에 수한이 죽었는데 후사가 없었다. 기자의 후손들은 읍차라는 벼슬을 이어오다가 기원전 323년 연나라의 침략을 받아 번한의 수한이 죽자 기후가 고조선의 보을(普乙)단제로부터 번한왕으로 책봉을 받는다. 기후 또한 승명(承命)하여 정호(正號)를 조선왕이라 하고 처음으로 번한성(番汗城)에 살면서 뜻하지 않는 일에 대비하였다. 또는 기원전 323년에 기허(기후)라는 수유족 유목민이 번조선에 난입하여 68대 번조선왕 수한을 밀어내고, 스스로 번조선왕이라 칭하자. 쇠약해진 단군조선 태왕 보을은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즉 번조선은 69대 ‘수한 기자(奇子)’를 끝으로, 70대에서 75대인 기준(箕準)까지 은나라 사람인 기자(箕子)의 후손이 계승하게 된다. 기원전 311년 진개가 탈출하여 28년 만에 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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