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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서 10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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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서 10성은 고구려 태조 대왕이 쌓았다. 현재는 요동까지만을 고구려의 강역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배웠던 역사와는 달리.. "삼국유사"에의하면 현제의 요하가 고대에는 압록하, 압록수 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중국의 고지도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고 하네요.. 따라서 당시 요수로 불렸던 현제의 난하를 기준으로 하여 요동과 요서 모두가 고구려의 강역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사기"의 기록만 보아도 알수있구요.. "삼국사기"고구려본기는 고구려 6대 太祖大王(태조대왕) 3년에 요서 지역에 10개의 성을 쌓은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요서에 10개나 되는 성을 쌓았다면 이 지역이 고구려의 영토임은 당연한것인데.. 우리는 요동만을 고구려의 영토라고 배우고있습니다. "삼국사기"는 위와 같은 내용만 말할뿐아니라 당시 요서 지역에 쌓았다는 10개의 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으나, "태백일사"에는 이들 10개 성터들의 이름과 위치까지 밝혀져있다고 합니다.
  • 요서 10성은 고구려 태조가 요동에 진출하여 쌓은 성이다. 원래 요(遼)라는 말은 단군조선에서 쓴 말이며, 요동과 요서의 기준선을 북경을 지나는 영정하로 하였는데, 이에 요동은 영정하의 동쪽으로 난하의 서쪽 지역이 되며, 요서지역은 영정하 서쪽 지역에 되는 것이다. 기원전 365년경까지 우리의 요동과 요서의 기준이 난하로 되기전까지 이어졌다. 고구려의 요서 10성은 고구려의 요서지역에 주로 있었다. 그래서 난하의 서쪽에 주로 있었던 것이다. (한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 고구려가 요서에 10성을 쌓다. 태조왕 3년, 봄 3월, 요서에 10성을 쌓았다. 한의 침입에 대비했다. 현토를 정벌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함으로써 동으로는 책성, 남으로는 살수에 미쳤다. 특히 요동에 진출하여 요서 10성을 쌓아 한의 동진을 막았으며, 부여를 앞세워 한나라와 대결하기도 하였다 고구려의 요서10성은 모두 영정하의 동쪽에 위치하고 난하의 서쪽에 위치하며 단지 요동성만 갈석산 부근에 위치하여 요동지역이 된다. 분류:요동군 분류:요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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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서 10성은 고구려 태조가 요동에 진출하여 쌓은 성이다. 원래 요(遼)라는 말은 단군조선에서 쓴 말이며, 요동과 요서의 기준선을 북경을 지나는 영정하로 하였는데, 이에 요동은 영정하의 동쪽으로 난하의 서쪽 지역이 되며, 요서지역은 영정하 서쪽 지역에 되는 것이다. 기원전 365년경까지 우리의 요동과 요서의 기준이 난하로 되기전까지 이어졌다. 고구려의 요서 10성은 고구려의 요서지역에 주로 있었다. 그래서 난하의 서쪽에 주로 있었던 것이다. (한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 고구려가 요서에 10성을 쌓다. 태조왕 3년, 봄 3월, 요서에 10성을 쌓았다. 한의 침입에 대비했다. 현토를 정벌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함으로써 동으로는 책성, 남으로는 살수에 미쳤다. 특히 요동에 진출하여 요서 10성을 쌓아 한의 동진을 막았으며, 부여를 앞세워 한나라와 대결하기도 하였다 고구려의 요서 10성은, 안시성(安市), 석성(石城), 건안성(建安), 건흥성(建興), 요동성(遼東), 풍성(豊城), 한성(韓城), 옥전보(玉田堡), 택성(澤城), 요택성(遼澤)이다. 안시성은 번한 요중 12성 중의 탕지이며, 요동은 갈산이 되고, 한성(韓城)은 한성(汗城)이 되며, 건안은 안시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석성은 건안의 서쪽에 위치하며, 건흥은 난하 서쪽에 위치하고, 풍성은 안시성의 서북에 위치하며, 풍성의 먼 남쪽에 한성이 위치하고, 옥전보는 옛 요동국이라 하는데 영정하의 하류 지역으로서 영정하의 바로 동쪽에 위치하는 것이 되고, 요택과 택성은 옥전보의 남쪽의 발해만 유역에 위치하는 것이 되고 옛 황하 북류의 왼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특히 옥전보는 지금도 개평의 서북에 이름이 남아 있는 지역이 존재하는데, 고구려의 요서10성의 옥전보인지는 불명이다. 고구려의 옥전보는 지금의 옥전보의 먼 서남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고구려의 요서10성은 모두 영정하의 동쪽에 위치하고 난하의 서쪽에 위치하며 단지 요동성만 갈석산 부근에 위치하여 요동지역이 된다. 분류:요동군 분류:요서군
  • 요서 10성은 고구려 태조 대왕이 쌓았다. 현재는 요동까지만을 고구려의 강역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배웠던 역사와는 달리.. "삼국유사"에의하면 현제의 요하가 고대에는 압록하, 압록수 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중국의 고지도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고 하네요.. 따라서 당시 요수로 불렸던 현제의 난하를 기준으로 하여 요동과 요서 모두가 고구려의 강역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사기"의 기록만 보아도 알수있구요.. "삼국사기"고구려본기는 고구려 6대 太祖大王(태조대왕) 3년에 요서 지역에 10개의 성을 쌓은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요서에 10개나 되는 성을 쌓았다면 이 지역이 고구려의 영토임은 당연한것인데.. 우리는 요동만을 고구려의 영토라고 배우고있습니다. "삼국사기"는 위와 같은 내용만 말할뿐아니라 당시 요서 지역에 쌓았다는 10개의 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으나, "태백일사"에는 이들 10개 성터들의 이름과 위치까지 밝혀져있다고 합니다. 첫째, 안시성 - 개평부 동북쪽 70리 둘째, 석성 - 건안의 서쪽 50리 셋째, 건안성- 안시의 남쪽 70리 넷째, 건흥성 - 난하의 서쪽 다섯째, 요동성 - 창려의 남쪽 여섯째, 풍성 - 안시의 서북 100리 일곱째, 한성 - 풍성의 남쪽 200리 여덟째, 옥전보성 - 한성의 서남쪽 60리 아홉째, 택성 - 요택의 서남쪽50리 열번째, 요택성 - 황하의 북안 왼쪽 5년 봄 정월에는 다시 백암성과 용도성을 쌓았다고 되있습니다. 이상의 성터들은 모두 하북성에 있는 난하를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포진해있고요 요서에쌓은 10개의 성은 당시 요수로 불렸던 현 난하의 서쪽과 동쪽에 위치하고있으며, 나중에 쌓은 두성을 합하면 모두 12개가 되지만 통상 요서10성이라 한것이라고 합니다.. 분류:고구려의 성 분류:요서 분류:요산성 분류:만주의 산성 분류:요서 10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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