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양군(范陽郡)은 곤륜산(昆侖山)에 있는 무위지향(無爲之鄕)이였다. 고구려 무원태왕전기에 따르면 아버지의 황위를 찬탈한 숙부로부터 보위를 되찾으려 등주자사 고법량과 그가 천거한 고보령을 휘하로 두는 범양군을 창설한다. 고보령은 대원수에 오르면서 고구려 서부의 최대도시인 유성을 공취하고 한다. 전진에는 380년 8월 이전에 한때 평주가 없는 유주가 있었으나 이때는 어양과 상곡군이 없었으며 연국과 범양군이 있는 것이 묵서명의 연군과 범양국과 반대로 기재되어 있다. 후연에도 보면 묵서명에 없는 당국이 더 있다. 북경은 광양군(廣陽郡)의 치소였다. 수나라 대업연간에는 탁군(涿郡)의 치소였다. 당나라 천보연간에는 범양군(范陽郡)의 치소였다. 요나라때는 석진부(析津府)의 치소였다. 명청시대에는 순천부(順天府)의 치소였다. 범양군은 본래 탁군(涿郡)이며, 천보(天寳) 원년에 이름을 바꾸었다. 토산품으로 조공을 바치는 품목으로는 비단(綾)과 목화(綿)와 비단(絹)과 각궁(角弓)과 인삼(人葠)과 밤(栗)이다. 가구수는 6,7242이였다. 후 유주(幽州)를 범양군으로 고치고 어양 등 8개 군을 예속시켰다고 하였다.
범양군(范陽郡)은 곤륜산(昆侖山)에 있는 무위지향(無爲之鄕)이였다. 고구려 무원태왕전기에 따르면 아버지의 황위를 찬탈한 숙부로부터 보위를 되찾으려 등주자사 고법량과 그가 천거한 고보령을 휘하로 두는 범양군을 창설한다. 고보령은 대원수에 오르면서 고구려 서부의 최대도시인 유성을 공취하고 한다. 전진에는 380년 8월 이전에 한때 평주가 없는 유주가 있었으나 이때는 어양과 상곡군이 없었으며 연국과 범양군이 있는 것이 묵서명의 연군과 범양국과 반대로 기재되어 있다. 후연에도 보면 묵서명에 없는 당국이 더 있다. 북경은 광양군(廣陽郡)의 치소였다. 수나라 대업연간에는 탁군(涿郡)의 치소였다. 당나라 천보연간에는 범양군(范陽郡)의 치소였다. 요나라때는 석진부(析津府)의 치소였다. 명청시대에는 순천부(順天府)의 치소였다. 범양군은 본래 탁군(涿郡)이며, 천보(天寳) 원년에 이름을 바꾸었다. 토산품으로 조공을 바치는 품목으로는 비단(綾)과 목화(綿)와 비단(絹)과 각궁(角弓)과 인삼(人葠)과 밤(栗)이다. 가구수는 6,7242이였다. 후 유주(幽州)를 범양군으로 고치고 어양 등 8개 군을 예속시켰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