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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창(劉鋹, 942년 ~ 980년)은, 오대십국시대의 남한의 제4대(최후)의 황제(재위:958년 - 971년).초명은 유계흥(劉繼興). 유성은 958년에 죽고, 장남 유창(劉鋹)이 계승했으나, 유창은 의심이 매우 강해 문관들을 살해하고 그 자리를 모두 환관으로 메우면서 유창의 조정은 거의 환관이 독점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창은 등용하려는 인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거세을 해야만 등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사태로 민심은 떠나고, 971년 송나라의 침공에 어떤 저항도 하지않았다. 유창은 재물을 갖고 도망치려 했으나 신임하던 환관에 의해 붙잡혀 송나라군의 포로가 되었고, 그의 영토도 송나라에 병합되었다. 유창을 시작으로 일족은 카이펑으로 옮겨져, 왕족으로써 대우을 받았다. 유창은 송나라의 좌천우위대장군(左千牛衛大將軍)이 되었고, 사후에는 남월왕(南越王)에 추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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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창(劉鋹, 942년 ~ 980년)은, 오대십국시대의 남한의 제4대(최후)의 황제(재위:958년 - 971년).초명은 유계흥(劉繼興). 유성은 958년에 죽고, 장남 유창(劉鋹)이 계승했으나, 유창은 의심이 매우 강해 문관들을 살해하고 그 자리를 모두 환관으로 메우면서 유창의 조정은 거의 환관이 독점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창은 등용하려는 인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거세을 해야만 등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사태로 민심은 떠나고, 971년 송나라의 침공에 어떤 저항도 하지않았다. 유창은 재물을 갖고 도망치려 했으나 신임하던 환관에 의해 붙잡혀 송나라군의 포로가 되었고, 그의 영토도 송나라에 병합되었다. 유창을 시작으로 일족은 카이펑으로 옮겨져, 왕족으로써 대우을 받았다. 유창은 송나라의 좌천우위대장군(左千牛衛大將軍)이 되었고, 사후에는 남월왕(南越王)에 추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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