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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요리아누스[Majorianus,(영)Majorian. 정식 이름은 Julius Valerius Majorianus.?~461. 8. 7 리구리아 데르토나]는 서로마 황제(457~461 재위)였다. 5세기의 로마 황제 가운데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유명한 군인 가문 출신으로 군지휘관 아이티우스 밑에서 일했고, 그후 아비투스 황제(455~456 재위) 폐위에 가담했다. 정부의 실권은 마요리아누스의 친구 리키메르에게 넘어갔으며 그는 16년 동안 황제 옹립자로 군림했다. 아비투스가 퇴위당한 후, 이 국왕 메이커인 리키메르는 로마 시민의 압도적인 요망에 동의하여 마요리아누스의 등극을 승인하였다. 고대로마법과 자유관념을 국민에게 심어주었으며, 제정을 재정립하였다. 457년 군지휘관에 임명되어 벨린초나(지금의 스위스에 있음)에서 알레만니족의 침입을 물리쳤고, 리키메르의 후원을 받아 같은 해 4월 1일 황제로 옹립되었다. 양심적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법을 악용한 징세를 막고 속주민(屬住民)을 억압으로부터 보호하려고 애썼다. 함대를 마련했지만 출발하기도 전에 반달족의 습격으로 함대가 불타고 말아 암살당했던 것이다. 분류:로마의 황제 분류:흥보전
- 마요리아누스[Majorianus,(영)Majorian. 정식 이름은 Julius Valerius Majorianus.?~461. 8. 7 리구리아 데르토나]는 서로마 황제(457~461 재위)였다. 5세기의 로마 황제 가운데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유명한 군인 가문 출신으로 군지휘관 아이티우스 밑에서 일했고, 그후 아비투스 황제(455~456 재위) 폐위에 가담했다. 정부의 실권은 마요리아누스의 친구 리키메르에게 넘어갔으며 그는 16년 동안 황제 옹립자로 군림했다. 아비투스가 퇴위당한 후, 이 국왕 메이커인 리키메르는 로마 시민의 압도적인 요망에 동의하여 마요리아누스의 등극을 승인하였다. 고대로마법과 자유관념을 국민에게 심어주었으며, 제정을 재정립하였다. 457년 군지휘관에 임명되어 벨린초나(지금의 스위스에 있음)에서 알레만니족의 침입을 물리쳤고, 리키메르의 후원을 받아 같은 해 4월 1일 황제로 옹립되었다. 양심적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법을 악용한 징세를 막고 속주민(屬住民)을 억압으로부터 보호하려고 애썼다. 함대를 마련했지만 출발하기도 전에 반달족의 습격으로 함대가 불타고 말아 암살당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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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요리아누스[Majorianus,(영)Majorian. 정식 이름은 Julius Valerius Majorianus.?~461. 8. 7 리구리아 데르토나]는 서로마 황제(457~461 재위)였다. 5세기의 로마 황제 가운데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유명한 군인 가문 출신으로 군지휘관 아이티우스 밑에서 일했고, 그후 아비투스 황제(455~456 재위) 폐위에 가담했다. 정부의 실권은 마요리아누스의 친구 리키메르에게 넘어갔으며 그는 16년 동안 황제 옹립자로 군림했다. 아비투스가 퇴위당한 후, 이 국왕 메이커인 리키메르는 로마 시민의 압도적인 요망에 동의하여 마요리아누스의 등극을 승인하였다. 고대로마법과 자유관념을 국민에게 심어주었으며, 제정을 재정립하였다. 457년 군지휘관에 임명되어 벨린초나(지금의 스위스에 있음)에서 알레만니족의 침입을 물리쳤고, 리키메르의 후원을 받아 같은 해 4월 1일 황제로 옹립되었다. 양심적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법을 악용한 징세를 막고 속주민(屬住民)을 억압으로부터 보호하려고 애썼다. 반달족에게 빼앗긴 아프리카를 되찾기 위해 458년 함대를 건조하기 시작했으며 자치를 원하고 있던 갈리아 지방의 지원을 받아 460년 5월 전함 300척을 이끌고 스페인으로 갔다. 그중 대부분은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 함대의 기습공격으로 스페인 해안의 알리칸테 만에서 거의 나포되었다. 결국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맺고 이탈리아로 돌아왔으나 곧 리키메르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했고 5일 후 처형되었다. 함대를 마련했지만 출발하기도 전에 반달족의 습격으로 함대가 불타고 말아 암살당했던 것이다. 분류:로마의 황제 분류:흥보전
- 마요리아누스[Majorianus,(영)Majorian. 정식 이름은 Julius Valerius Majorianus.?~461. 8. 7 리구리아 데르토나]는 서로마 황제(457~461 재위)였다. 5세기의 로마 황제 가운데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유명한 군인 가문 출신으로 군지휘관 아이티우스 밑에서 일했고, 그후 아비투스 황제(455~456 재위) 폐위에 가담했다. 정부의 실권은 마요리아누스의 친구 리키메르에게 넘어갔으며 그는 16년 동안 황제 옹립자로 군림했다. 아비투스가 퇴위당한 후, 이 국왕 메이커인 리키메르는 로마 시민의 압도적인 요망에 동의하여 마요리아누스의 등극을 승인하였다. 고대로마법과 자유관념을 국민에게 심어주었으며, 제정을 재정립하였다. 457년 군지휘관에 임명되어 벨린초나(지금의 스위스에 있음)에서 알레만니족의 침입을 물리쳤고, 리키메르의 후원을 받아 같은 해 4월 1일 황제로 옹립되었다. 양심적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법을 악용한 징세를 막고 속주민(屬住民)을 억압으로부터 보호하려고 애썼다. 반달족에게 빼앗긴 아프리카를 되찾기 위해 458년 함대를 건조하기 시작했으며 자치를 원하고 있던 갈리아 지방의 지원을 받아 460년 5월 전함 300척을 이끌고 스페인으로 갔다. 그중 대부분은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 함대의 기습공격으로 스페인 해안의 알리칸테 만에서 거의 나포되었다. 결국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맺고 이탈리아로 돌아왔으나 곧 리키메르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했고 5일 후 처형되었다. 함대를 마련했지만 출발하기도 전에 반달족의 습격으로 함대가 불타고 말아 암살당했던 것이다. 분류:로마의 황제 분류:흥보전 분류:야누스 분류:율리우스 분류: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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