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300px|right|기원전 2세기의 오손과 그 이웃나라 오손 또는 우선(烏孫)은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유목 민족이었다. 오손족은 중국문헌에 따르면 중국의 북동부의 예지 근처에 살았다. 그러나 기원전 176년 경 일리 강과 이시쿨 호수의 영역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숑누에 패한 후 그곳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형성하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5세기 동안 머물렀다. 오손에 대한 중국의 가장 최근의 문헌은 서기 436년에 중국의 사절단이 방문한 것이다. 그들의 다음 운명은 투르크 왕국과 중앙아시아 특히 제티수 지역에 닥친 운의 돌연 역전과 관련있다. 그들의 이동의 상당한 흔적과 충격이 6세기에서 오늘날까지 페르시아, 무슬림, 투르크와 러시아 문헌에 남아있다. 현재 그들의 후손은 약 250,000 명이며 서기 1세기의 인구의 절반정도이다. 우이신스는 두 종족이 있는데 둘라트와 사리 우이신(황오손)이 그들이다. 카자흐족은 오손도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여기고 있다.
thumb|300px|right|기원전 2세기의 오손과 그 이웃나라 오손 또는 우선(烏孫)은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유목 민족이었다. 오손족은 중국문헌에 따르면 중국의 북동부의 예지 근처에 살았다. 그러나 기원전 176년 경 일리 강과 이시쿨 호수의 영역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숑누에 패한 후 그곳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형성하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5세기 동안 머물렀다. 오손에 대한 중국의 가장 최근의 문헌은 서기 436년에 중국의 사절단이 방문한 것이다. 그들의 다음 운명은 투르크 왕국과 중앙아시아 특히 제티수 지역에 닥친 운의 돌연 역전과 관련있다. 그들의 이동의 상당한 흔적과 충격이 6세기에서 오늘날까지 페르시아, 무슬림, 투르크와 러시아 문헌에 남아있다. 현재 그들의 후손은 약 250,000 명이며 서기 1세기의 인구의 절반정도이다. 우이신스는 두 종족이 있는데 둘라트와 사리 우이신(황오손)이 그들이다. 카자흐족은 오손도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여기고 있다.